북녘 | 고구려때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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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리 작성일15-08-31 10:51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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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때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축구
편집국
북 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소 소장 공명성은 축구의 유래에 관해 소개하였다. 고구려때부터 축구가 시작하였다고 하면서 <신당서> 자료에 의하면 축구이전의 형태인 축국은 삼국사기때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이에 전문을 소개한다.
조선에서 축구의 유래
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소 소장 공명성

지난해 남쪽의 인천에서 진행된 제17차 아시아올림픽경기대회에서 북의 녀자팀이 1등한 소식은 세계축구계의 많은 전문가들과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시아에서는 조선의 녀자축구가 패권을 쥐고있다.
세상사람들은 지금도 1966년 영국에서 진행된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유럽의 강팀으로 알려진 이딸리아팀을 이기고 8강까지 진출하였던 조선남자축구팀에 대해서 잊지 않고 있다.
체육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문제는 선수들의 육체적준비도 중요하지만 체육에서의 력사도 역시 배제할수 없는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많은 사람들은 조선의 축구력사를 어린아이라고 보고있다.
그런데 다른 자료에 의하면 조선에서 축구가 생긴것이 고구려때부터였으며 평양을 중심으로 조선의 축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는 설도 제기되고있다.
《신당서》에 의하면 고구려사람들은 바둑이나 투호와 같은 놀이와 함께 축국을 잘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이미 축구가 세상에 나오기 이미전에 조선에 축구와 같은 형태의 축국이라는 놀이가 있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기록에 의하면 축국의 놀이방법은 오늘의 축구와 비슷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선에 축구가 체육운동종목으로 정식 들어온것은 20세기초이지만 축구와 같은 운동형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할수 있다. 축국은 가죽주머니로 공을 만들어 그속에 겨나 털 또는 공기를 넣어 발로 차며 노는 놀이였다.
영국인들이 해골을 발로 차며 논것으로부터 유래된 축구의 력사를 놓고볼 때 가죽주머니에 겨나 털, 공기를 넣어 발로 차는 축국은 영국인들이 만든 축구보다는 발전된것으로 볼수 있다.
백제에서는 축국을 《롱주희》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수서》에서는 《백제에서는 롱주희를 즐겨한다.》고 한 사실을 통해서 알수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서도 《신라사람들은 축국을 롱주희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삼국시기 축국을 일명 롱주희라고도 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봉건왕조를 거쳐오면서 줄곧 진행되여온 축국의 운동방식은 오늘날의 축구와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되였다.
고려때의 축국과 관련한 기록을 보면 리규보의 《동국리상국집》에 《우연히 기구를 보고 생각되는바 있어 뜻을 붙여 시를 지으니 공에 바람을 넣어 사람들이 모여 차다가 바람이 빠져 사람들이 또한 헤여져 가니 쭈그러진 빈 주머니만 남았다.》는 기록을 통해 축국은 가죽주머니에 겨나 털, 공기를 넣어 만든 오늘날의 공과 같은것이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와서도 축국은 널리 보급된 민속놀이의 하나였다.
《세종실록》의 1425년 4월 기록에는 축국이 옛날부터 싸움법을 익히기 위한 과정에 생겨난 놀이라고 하였으며 《지봉류설》에서도 역시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해 진행된 놀이라고 하였다.
1790년에 출판된 《무예도보통지》에서 《축국은 공을 가지고 노는 놀이이다. 옛날에는 털을 묶어 만들었고 지금은 가죽태(소의 오줌통으로 공을 만든것)로 속에 바람을 불어넣어 이것을 찬다.》고 하였고 《동국세시기》에서는 《년소한 장정들이 축국놀이를 한다.》고 하면서 축국놀이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삼국시기부터 고려, 조선봉건왕조를 거쳐 널리 진행되여온 축국은 20세기초 일부 근대식학교들에서 현대축구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1906년 3월 11일에는 궁내부 례식원 주사인 현양운 등 30여명이 모여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축구협회를 조직하고 황성기독교청년회 회원들과 삼선평에서 처음으로 축구경기를 가지였다.
일본강점시기인 1928년 평양숭실중학은 일본의 전국중학교축구대회에서 조선대표로서 출전하여 우승을 거두어 평양의 축구실력은 조선뿐아니라 일본에서도 강한 인식을 주었다.
이렇게 고조되였던 축구는 1942년 일본군의 탄압으로 중지당하였으나 그 정신은 조선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은 여운을 남기였으며 오늘날 조선에서 축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누구나 좋아하는 인기종목. 사회풍조로 되고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9-01 14:52:10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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