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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연재] 친일로 얼룩진 죄악의 행적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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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12-06 05:4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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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친일로 얼룩진 죄악의 행적 


 


 


  


우리 민족의 력사에는 외세에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팔아먹은 매국노들의 죄악이 새겨져있다지난 세기초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 겨레가 상가집개만도 못한 식민지노예살이를 하게 된것도 일제침략자들에게 나라를 송두리채 팔아먹은 을사오적과 같은 매국노들의 용납 못할 민족반역행위에 적지 않은 원인이 있다.

 

우리 민족이 일제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 때로부터 7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괴뢰지역에서는 여전히 친일매국노들이 제세상처럼 날뛰고있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겨레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어야  친일파민족반역자들과  후예들이 오늘까지도 일본의 과거죄악과 저들의 반민족적범죄를 미화분식하면서 친일사대매국책동에 열을 올리고있는것은 민족의 더없는 수치가 아닐수 없다.

 

 도서에서는 괴뢰지역의 친일사대매국노들이 해방후부터 오늘까지 저지른 천추에 용납 못할 민족반역죄악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저 한다

 

 

2. 친일에 명줄을  군사깡패무리


 

《운명공동체》를 떠든 군사파쑈깡패

 

 

 

친미, 친일사대매국과 파쑈독재를 일삼던 박정희역도가 뒈진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은것은 군부깡패 전두환역도였다. 이자 역시 친일매국에 환장이 민족반역자였다.

 

 

당시 극악한 친일주구였던 박정희가 하루아침에 심복의 총에 맞아죽자 《예측하지 못했던 불행한 일》이라며 애석해한 일본반동들은 와세다대학의 교수를 들여보내여 박정희사살후 《국가보위상임위원회》 위원장감투를 쓰고있던 전두환을 막후에서 접촉하게 하였다. 전두환역도는 그자를 어느한 고급료정으로 끌고가 《밤의 환영연회》를 베풀었다. 연회에서 전두환역도는 과거《황군》이 부르던 군가를 일본어로 부르면서 친일의 본색을 드러내보였다.

 

 

이를 통해 역도의 친일기질을 확인한 일본은 1980 9 전두환역도의 《대통령》취임식에 《축전》과 《축하단》을 보낸데 이어 수상 후꾸다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괴뢰지역에 파견하였다. 전두환역도는 후꾸다를 만난 자리에서 《고명한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한국> 방문해주어 고맙다.》느니, 《전번 취임식에 축전을 보내준 스즈끼수상에게 사의를 표시한다는것을 전해달라.》느니 하면서 온갖 비굴한 추태를 부리였다.

 

 

전두환역도의 집권당시 괴뢰경제는 미국과 일본에 예속된 기형적인 구조와 과도한 군사비지출로 하여 침체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역도는 경제위기의 출로를 《일본과의 경제협력》에서 찾고 섬나라것들에게 구차한 구걸질을 일삼았다.

 

 

1981 5 서울에 일본 지지통신사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전두환역도는 80년대 국제정세를 전망하면 도처에 전쟁위험이 있으며 장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동북아시아 특히 조선반도는 전략적요충지이며 지대는 하나의 키를 쥐고있다. 80년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일이 공동의식, 운명공동체의 인식에 기초한 차원높은 경제협력을 해야 한다.》고 지껄이면서 섬나라것들에게 도와줄것을 애걸복걸하였다. 당시 일본출판물들은 전두환역도가 일본과 괴뢰지역과의 관계를 《운명공동체》라고 묘사한것을 두고 <한국> 집권자가 일본을 <운명공동체>라고 부른것은 처음의 일이다.》고 하면서 <한국>측이 과거의 원한을 극복하고 <운명공동체론> 제안해온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상으로 60US$정도의 원조를 주는것은 값싼것이 아닌가.》라고 떠들어댔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쑤인 일본을 《운명공동체》라고 추어올린 전두환역도는 1983 1월에는 당시 일본수상 나까소네를 《공식방문》의 형식으로 괴뢰지역에 끌어들이였다. 그전에도 일본의 현직수상이 괴뢰지역을 행각한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경축사절》이나 《조문사절》의 성격을 띤것이였고 《공식방문》은 나까소네가 처음이였다. 전두환역도는 나까소네와의 회담에서 허리를 굽혀 빌붙은 끝에 높은 리자률로 40US$ 차관을 주겠다는것을 약속받았다.

 

 

여기에 감지덕지한 역도는 다음해 9월에는 괴뢰집권자로는 《공식방문》의 명목으로 일본에 기신기신 찾아갔다. 도꾜에서 나까소네와 만난 전두환역도는 《확실히 일부 반대세력도 있었지만 나로서는 그러한 일에 구애를 받지 않고 한일 1천년의 우호의 력사를 만들기 위해 일본방문을 결단하였다.》고 아부아첨하였다. 또한 역도를 궁성에 불러들인 왜왕이 《불행한 력사가 있은것은 유감》이라는 넉두리를 늘어놓자 《력사적인 한일관계의 개막에 즈음하여 페하가 량국관계사에서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서 말한것을 나는 우리 국민과 함께 엄숙한 마음으로 경청하였다. 우리 량국간에 있었던 불행한 과거는 오늘보다 밝고 보다 친근한 한일간의 미래를 개척해나가는데서 귀중한 디딤돌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는다.》고 뇌까렸다. 그리고 일본방문기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일본과의 관계는 선린우호관계》라느니, 《자유, 평화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리념을 추구하는 한일 량국간의 협력관계》라느니 하는 망발을 늘어놓았다.

 

 

이처럼 전두환역도가 일본에 건너가 부린 추태를 두고 각계층 인사들과 언론들은 《대일매국외교》라고 규탄하면서 《너무나도 잔혹했고 처참했던 과거였던것만큼 히로히또왕의 몇마디 말은 민족의 마음속에 새겨진 분노를 1%도 해소할수 없다., 《일왕은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다분히 추상적인 표현법을 썼다. 발언은 절대로 사죄가 아니다.》고 성토하였다. 하지만 전두환도당은 왜왕의 발언이 《사죄》라고 하면서 일본반동들의 립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였다.

 

 

전두환역도가 친일매국책동에 매여달리는 속에 괴뢰경제의 대일의존도, 대일예속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괴뢰출판물은 이에 대해 <한국>경제의 일본경제의 <하청경제>적성격이 더욱 짙어가고있다. 그것은 <한국>경제의 대일예속의 심화를 의미하는데 예속화는 자본, 자재, 기술, 판로에 이르는 모든 경제령역에까지 확대되는 전면적이며 종합적인 예속화로서의 성격을 나타내고있다.》고 개탄했다.

 

 

실질적으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괴뢰들은 공업품의 40, 원료, 자재의 46, 기계류의 60%이상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있었다. 결과적으로 1966년부터 1986년까지 21년간의 괴뢰들의 대일무역적자루적액은 381US$ 달하였으며 1987 한해동안에만 해도 대일무역적자액은 60US$ 달하였다.

 

 

더욱 문제로 되는것은 괴뢰들과 일본사이의 이러한 무역불균형이 구조적원인때문이라는데 있다. 일본의 차관에 의하여 《성장》한 괴뢰수출산업은 일본에서 부품과 원료, 기계설비를 들여다 값싼 로동력으로 조립하여 수출하는 방식이였으므로 수출을 하면 할수록 일본에서 원료, 부품, 기계설비를 더욱더 들여와야만 하는 수입증대구조가 굳어졌다.

 

 

전두환역도의 집권기간 일본과의 군사적결탁도 더욱 강화되였다. 역도는 집권직후 일본수상 후꾸다와 만난 자리에서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것을 제안하였다.

 

 

내용을 보면 《량국군간에 무기, 부품, 탄약 등의 호환성을 실현한다. 군인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정기적인 합동군사연습을 실시한다. 유사시 상호지원부대를 파견한다. 등이였다. 이처럼 집권초기부터 일본과의 군사적결탁을 꾀한 전두환도당은 일본에서 땅크생산용특수장갑판을 비롯하여 땅크, 장갑차, 군함부속품들을 몰래 수입하여 저들의 살인무기생산에 리용하는 한편 《군사교류》라는 미명하에 일본《자위대》것들과 일본방위대학교 학생들을 괴뢰지역에 끌어들여 북침전쟁모의를 벌렸다. 또한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인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에 일본《자위대》 장교들을 《견학》이라는 명목하에 참가시키는 《한미일3각군사동맹》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전두환역도에 의해 썩어빠진 일본문화도 괴뢰지역으로 물밀듯이 쓸어들어왔다. 전두환도당은 1982 4 일본과 《문화교류기금》이라는것을 만들어놓고 《청소년, 문학, 음악 등의 교류를 대폭적으로 추진》시켜나갔다.

 

 

《문화교류기금》은 창설후 류학생교환, 문학작품소개, 교향악단교환, 미술전람회교환 등으로 괴뢰지역에 대한 일본의 문화침략을 적극적으로 조장하였으며 그것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괴뢰지역 어디에서나 일본어가 범람하고 일본의 소설, 료리, 노래, 가극, 만화가 해당 분야를 휩쓸었다. 지어 《천리교》, 《일련정종불교회》, 《선린회》를 비롯한 일본의 종교단체들까지 괴뢰지역에 침투하여 교세를 확장하였다.

 

 

군사파쑈깡패인 전두환역도와 패당은 이처럼 추악한 친일사대매국책동으로 력사에 죄악의 페지들을 남겼다.

 

 

 

 

 

《미래지향》으로 감싼 친일굴종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겠다.

 

 

이것은 1987년말 괴뢰대통령선거에 나섰던 로태우역도가 내든 기만적인 공약이였다. 로태우역도는 괴뢰대통령취임식때 서울에 기여든 일본수상 다께시다와 만난 자리에서 자기가 요란스럽게 떠든 《보통사람》이라는 말이 1932년당시 일본의 총리대신이였던 이누가이가 떠들

 

《평민, 서민, 민주》라는 발언에서 생각해낸것이라고 뇌까렸다.

 

 

망발을 통해 알수 있는바와 같이 로태우역도도 친일매국을 생리로 하는 추악한 역적이였다. 이자의 친일근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것은 《대통령》선거기간에 벌린 일본작가와의 회견에서 자기가 오래전부터 일본의 《명치유신》당시 《지사》들의 사상을 연구해왔다고 하면서 이또 히로부미의 선배인 다까스기 신사꾸의 사상과 행동을 숭배하는 <한국> 다까스기 신사꾸》가 바로 자기라고 지껄인데서 알수 있다.

 

역도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자기의 소학교 선생이였던 일본인을 청와대에 불러들인 자리에서도 《센세이!(선생님)》라고 부르며 일본영화와 일본책을 무척 좋아하고 모리노 이시마쯔라는 깡패를 존경했던 소학교시절을 잊지 못해하였다.

 

 

이런자였기에 집권기간 일본의 과거죄악을 덮어버리고 섬나라와의 관계를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의 관계》로 만들기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로태우역도의 친일사대매국행위는 1989 1 왜왕인 히로히또가 죽었을 극도에 달하였다. 히로히또로 말하면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안겨준 원흉이였으며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세계평화를 유린한 전범자이기도 했다. 하기에 당시 서방나라들에서까지 왜왕의 사망과 관련하여 《일왕의 죽음은 악명높았으나 뉘우치지 않는 전범자의 죽음》이라고 하면서 《전쟁이 끝났을 총살하거나 공개적으로 목을 잘라 죽였어야 했다., 《그의 죽음에 어떤 동정을 표시한다는것은 치가 떨릴 정도로 불쾌한 일이다., 《일왕의 장례식에 가는것은 악마의 장례식에 가는것이나 같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로태우역도는 왜왕이 죽자마자 조전을 보낸다, 조화를 전달한다 하고 부산을 피웠으며 지어 일본에 기도까지 드러냈다. 역도의 이러한 망동과 관련하여 괴뢰지역의 각계층은 과거 40여년동안 조선을 강점하고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 하였던 철천지원쑤의 초상집에 결코 가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역도의 일본행각을 반대배격하였다.

 

 

민심의 드높은 반일기세에 눌리운 로태우역도는 《과거의 력사를 고려》하여 일본에 가는것은 일단 삼가하겠지만 그대신 《국무총리》를 《조문사절대표》로 보낼것이라고 하면서 민의를 우롱하고 모독하였다. 이에 분노한 각계층은 우리 겨레에게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을뿐 아니라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징용과 징병으로 끌어가 노예로동을 강요하고 무참히 학살한 장본인인 히로히또의 장례식에 《조문사절》을 파견하는것은 민족의 수치이고 일본군국주의의 부활을 돕는 행위라고 규탄하면서 역도의 친일사대행위를 배격하는 집회와 시위를 벌렸다. 하지만 역도는 끝끝내 왜나라에 《조문사절》을 파견하는 반민족적망동을 저질렀다.

 

 

이렇게 일본에 아부아첨한 로태우역도는 다음해인 1990 5월에는 직접 일본에 찾아갔다. 이자의 일본행각을 앞두고 각계는 《로태우의 방일은 <한국> 대일종속을 심화시킬것이다., 《이번 방일은 반통일적인 한미일3각안보체제를 강화하고 대일경제종속을 심화시키는 반민족적처사이다., 8.15이후 45년이 지나도록 일본의 국가원수가 잔학한 식민지지배에 관해 사죄한적이 없고 일본의 보수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일왕의 사과는 있을수 없다면서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고있는 판국에 <대통령> 굳이 거기 가서 얻을것이 무엇이냐.》라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였다.

 

 

하지만 이자는 이런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으로 떠나면서 비행장에서 《출국인사》라는데서 《어두웠던 지난 시대를 씻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열겠다.》고 하면서 지난날 일제의 조선침략을 백지화하려는 속심을 드러냈다. 도꾜에서 역도를 만난 왜왕은 《궁중만찬회》석상에서 《불행했던 시기를 생각하면 <통석의 > 금할수 없다.》는 얼빠진 수작을 늘어놓았다. 왜왕이 지껄인 《통석의 념》이란 애석한 마음이란 뜻으로서 일본에서도 쓰지 않던 낡은 한자단어이며 《사죄》를 의미하는 말은 더욱 아니였다. 하지만 역도는 왜왕이 지난날의 엄청난 죄악에 대하여 사죄하기는커녕 《통석의 념》이라는 외마디로 굼땐것을 《높이 평가》하고 그에 《경의를 표한다.》고 하면서 지난날의 일을 《신념과 용기로 단절》하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노라고 맹세를 다지는 추태를 부리였다. 이자는 일본의회에서 《연설》이라는데서 《번영과 민주주의의 나라》라고 일본을 극구 찬양하면서 《한국》이 일본의 《가깝고도 가까운 동반자》로 되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왔다고 아양을 떨었다. 뿐만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협력》과 《공동노력》으로 《포괄적인 선린우호협력의 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하면서 괴뢰지역을 일본침략세력에 떠맡기려는 속심을 로골적으로 드러냈다. 사실상 이것은 일본반동들의 《협력》을 구걸하기 위해 괴뢰지역을 그들에게 통채로 섬겨바치겠다는 매국선언이며 일신의 안일과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면 수치도 모르고 체면도 렴치도 없이 날뛰며 나라와 민족을 서슴없이 팔아먹는 역적의 몰골을 그대로 드러낸것이다.

 

 

2023 3 괴뢰언론은 로태우역도가 1990 5 일본행각을 마치고 돌아와 왜왕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하였다. 편지에서 역도는 왜왕을 《천황페하》라고 괴여올리며 《금번 방일을 통하여… 우리 량국국민이 미래를 향하여 서로 손잡고 나아가는 본연의 이웃으로 살아갈수 있을것이라는 평소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해주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현실과 미래의 나아갈바를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였습니다.》라고 하면서 왜왕을 괴뢰지역에 초청하는 쓸개빠진짓까지 했다.

 

 

로태우의 일본행각은 극동지역에서 미일괴뢰사이의 3각군사동맹체제를 완성하려는 미국의 전략과 각본에 따라 이루어졌다. 로태우의 일본행각을 계기로 일본반동들과 괴뢰들사이에 벌어진 정치회담들과 이와 별도로 괴뢰합동참모본부 의장과 일본《자위대》통합막료회의 의장 사이에 벌어진 군사밀담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로태우역도가 일본을 행각하여 일본과의 《군사일체화》를 제창한것도 결국은 미국의 각본에 따라 일본과의 군사적결탁을 강화하기 위한것이였다.

 

 

하기에 겨레는 로태우역도의 일본행각이 섬나라와의 범죄적결탁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일본반동들에게 조선반도재침의 길을 넓게 열어주고 왜나라것들의 뒤받침밑에 정치, 경제적위기를 모면해보려는 매국행각, 구걸행각이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고 아시아의 전반적평화를 위협하는 범죄행각이라고 규탄하였다.

 

 

로태우역도는 일본군성노예문제를 놓고서도 왜나라것들에게 아부굴종하는 죄악을 저질렀다.

 

 

1991 8 일본의 《아사히신붕》에는 괴뢰지역에 살고있던 김학순녀성이 자신이 과거에 일본군성노예였다는것을 증언하는 기사가 실리였다. 그가 일본이 감행한 치떨리는 성노예범죄행위에 대해 증언한 이후 수백명에 달하는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이 련이어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공개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며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였다. 국제사회에서도 일본의 반인륜적범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활화산처럼 터져나왔다.

 

 

하지만 로태우일당은 일본군성노예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우리 공화국의 정당한 제의에 대해 거부적태도를 보였을뿐 아니라 그에 대해 일본당국에 《공식통고》까지 하며 그들과 야합하는 길로 나갔다. 뿐만아니라 일본군성노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과 남의 민간단체들사이의 공동투쟁에 대해서도 음으로양으로 훼방을 놀았다. 괴뢰보수언론들과 친일파떨거지들도 이에 발맞추어 일본군성노예문제가 《창피한 문제》라느니, 《력사의 심판을 받도록 기록이나 남기는것이 중요》하다는따위의 수작을 늘어놓았다.

 

 

로태우일당이 이처럼 친일굴욕적인 자세를 취하자 일본반동들은 기고만장하여 《개인청구권문제》는 1965년의 《한일협정》에 의해 해결되였다고 제편에서 큰소리를 쳤는가 하면 일본군성노예범죄자체를 부정하는짓도 서슴지 않았다. 이렇듯 괴뢰지역의 친일파, 민족반역자들과 일본반동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그때로부터 30여년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의 한은 풀리지 못하고있다.

 

일본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떠들며 친일매국의 길로 줄달음친 로태우역도의 수치스러운 친일굴종죄악은 오늘도 겨레의 저주와 규탄을 받고있다.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23-12-06 05:46:48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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