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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령관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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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2-12-10 12:5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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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지 병 학

 

(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충직한 전사인 최춘국동지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유능한 군사지휘관이며 정치일군이였다.

그는 왕청유격근거지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를 받으며 투쟁하던 시기에 그이의 혁명사상과 덕성, 탁월한 전략전술과 혁명적사업방법으로 자신을 철저히 무장하기 위해 있는 열성을 다하였다.

하기에 그는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 항일무장투쟁의 전략전술적방침들을 빛나게 관철할수 있었다.

나는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 최춘국동지와 한 부대에서 생활하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수많이 보았으며 혁명임무수행에서의 그의 높은 책임성과 희생성으로 하여 깊은 감동을 받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독립려단을 편성하던 때의 일이다.

19362, 력사적인 남호두회의가 있은 이후 북만일대에서 활동하던 최춘국동지는 사령관동지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 독립려단을 편성하여 백두산일대로 진출하라는 과업을 받았다.

최춘국동지는 이 중대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탕원, 방정 등지에서 활동하고있던 부대들에 련락을 보내는 한편 자신은 직접 녕안현 남호두일대에서 활동하고있던 3중대를 데리러 떠나게 되였다.

그런데 동지들은 그가3중대를 데리러 가는 로정을 수림속으로 잡는것이 아니라 수많은 적들이 언제나 주둔해있을 가장 위험한 벌판으로 택하는것을 보고 모두 의아해하였다. 그의 유능한 전투지휘능력과 령활성을 잘 알고있는 동지들까지도 이는 하나의 모험에 가까운 일이라고들 하였다.

최춘국동지는 전우들의 의견을 주의깊게 듣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생각에는 벌판으로 가는것이 오히려 더 안전할것 같소. 지금 일제<토벌대>놈들은 우리 유격대를 <토벌>해보려고 벌판이 아니라 산속에 집중되여있소. 그러니 산속으로 가자면 불가피하게 적과 조우하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간이 한정없이 걸릴수도 있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소왕청방어전투때 적의 약점을 잘 리용할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몸소 일부 부대를 거느리시고 적들의 후방인 량수천자와 왕청시가 등 도처에서 적의 배후를 타격하여 놈들에게 심대한 패배를 주었소. 이렇게 되자 수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유격근거지를 없애보겠다고 발악하던 일제놈들은 근거지<토벌>에 내몬 자기 병력을 부득히 철수하지 않을수 없었소.

물론 이번에 우리가 지나가려는 벌판은 그때의 정황과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놈들이 그리 주의를 돌리지 않고있는 점에서는 다를바가 없소.

적들의 전법과 행동질서를 잘 알고 침착하게 행동한다면 동경성부근까지는 전투없이도 갈수 있다고 보오. 다음부터는 한두번 요긴한 싸움을 해서 적들을 혼란에 빠뜨려놓고 쭉 빠지면 경박호도 쉽게 건늘수 있을거요.》

최춘국동지의 이 말을 듣고야 동지들은 비로소 그의 전술적의도를 리해하게 되였다.

최춘국동지는 출발에 앞서 우선 적들의 배치정형과 활동정형 등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한편 위만군 겨울옷을100여벌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대원들에게 입히고 편제의 직급에 해당한 견장까지 달아주었다.

최춘국동지는 이렇게 적들의 소굴을 뚫고나갈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갖춘 다음 남호두를 향하여 떠났다.

행군은 벌판을 따라 주로 밤에 하였다.

행군하다 날이 밝으면 큰 부락이나 성시에서 멀리 떨어진 자그마한 부락에 들어가 위만군행세를 하며 쉬군 하였다. 물론 경비조직은 빈틈없이 하였다. 마을주민들은 위만군이 어디에 토벌나갔다 오는줄로만 알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렇게 매일 전투없이 한주일을 행군한 결과 산발을 타고 적과 조우하면서 행군한다면 수십일이 걸려도 다달으기 어려운 동경성과 경박호부근의 한 마을에까지 이르게 되였다.

이 마을은20호가 되나마나한 집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어 숙영하기에 매우 불리한 곳이였다.

최춘국동지는 벌판에 흩어져있는 집들을 살펴보고나서 그중 토성네귀에 포대가 있는 큰 지주집으로 대오를 인솔하는것이였다.

그는 지주집에 들어가자 아양을 떠는 지주와 그 가족들을 몽땅 한방에 몰아넣고 옴짝못하게 문을 닫아걸게 하였다. 그리고 포대에는 보초를 세웠다.

대원들은 이날 낮에도 푹 쉴수 있었다.

그런데 저녁차비를 할 무렵에 보초가 한 쉰살쯤 되여보이는 빗장사군을 데리고 들어왔다.

최춘국동지는 그 빗장사군과 몇마디 말을 주고받더니만 인차 그 놈이 적들이 파견한 밀정이라는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놈을 통해서 동경성의 적들이 이 마을에 알수 없는 위만군부대가 새벽에 들어왔다는 통보를 받고 사방에 전화를 걸며 야단친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그렇지만 최춘국동지는 얼굴빛 하나 달리하지 않았다. 그는 저녁밥을 빨리 지으라고 지시하고는 이런 말을 하였다.

오늘저녁엔 싸움을 한번 해야 할것 같소. 적들이 우리 부대의 행동을 눈치챈 조건에서 이제부터는 산발을 타고 행군해야 하겠는데 그럴바에는 놈들이 우리의 행방을 알지 못하도록 싸움을 한번해서 경박호의 적들이 전부 이리로 쏠리게 유도해놓아야 하겠소.

그래야 경박호도 쉽게 건느고 또3중대를 데리고 돌아갈 때도 순조롭게 갈수 있을것 같소.

모든 정황이 우리가 예측한대로 되여가오.》

여느날보다 일찌기 저녁식사를 끝마친 부대는 날이 어둡기 전에 행군을 시작하였다.

부대의 선두에는 일본말을 잘하는 두 동무가 척후로 나갔다. 부락을 벗어나서 얼마쯤 가니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 보였다. 척후가 언덕우에 올라섰을 때는 벌써 날이 어두워질무렵이였다. 척후와 약 50m사이를 두고 뒤따르던 선두대오가 언덕우에 오르자 척후는 언덕을 절반쯤 내려갔다.

그런데 이때 척후는 불의에 일제토벌대와 맞다들게 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최춘국동지가 가르쳐준대로 먼저 큰소리로 어느 부대인가고 물었다. 선수를 우리에게 빼앗긴 적들은 그저 아군이라고 하면서 우물쭈물하였다.

그사이에 최춘국동지는 언덕우에 전투배치를 한 다음 태연하게 적의 동태를 살피고있었다.

적들은 잠시후에야 자기들은 토벌나갔다 돌아오는 어느 부대라는것을 알려왔다.

그러자 최춘국동지는 우리 척후대원들을 통해서 진짜 아군이라면 암호신호를 보내라고 적에게 요구하였다.

적지휘관놈은 그 어떠한 기미도 알아차리지 못했던지 전지불로 왼쪽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세번 그리는것이였다.

그러자 최춘국동지는 옆에 서있는 소대장의 전지를 달라고 하더니 오른쪽으로 두번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가운데 세웠다.

 신호를 받은 적지휘관놈은 주저없이 엎드려있는 대오를 일쿼세워가지고 언덕으로 올라왔다. 적들은 우리의 대답신호를 받고 자기 편인줄로만 알았던것이다.

적들은 언덕우에 올라와 쉬려고 행군서렬도 제대로 유지하지 않고 한데 몰켜서 법석 고아대며 올라오고있었다.

싸창을 빼여들고 섰던 최춘국동지는 놈들이30~40m의 거리에 접근했을 때 불의에 적지휘관놈을 쏘아눕혔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언덕 좌우에 매복하고있던 대원들은 일제사격으로 놈들을 풀대 베여넘기듯이 쓰러뜨렸다. 경기관총을 쥐고있던 1소대장동무는 첫 사격에 10여명을 꺼꾸러뜨렸다.

이렇게 적토벌대놈들을 통쾌하게 소멸한 최춘국동지는 움직이는 적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자 대오를 행길쪽으로 쭉 뽑았다. 그리고 적들이 지나온 발자국을 따라 얼마쯤 가다가 대오를 감쪽같이 옆으로 뽑아 1시간에 20리의 속도로 강행군을 하게 했다.

이리하여 부대는 날밝기전에 경박호를20~30리앞에 둔 지점에 이르게 되였다.

최춘국동지는 푸름푸름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바라보더니 휴식명령을 내렸다.

이것이 그날밤의 첫 휴식이였다.

바로 이때 척후대원이 한대의 말파리가 달려온다는 보고를 하였다.

최춘국동지는 천천히 담배 한대를 붙여물고 행길에 나섰다.

쏜살같이 달려오던 말파리는 위만군장교 옷차림을 한 최춘국동지앞에 와서 멎었다. 그러자 말파리에 탔던 다섯놈이 급히 뛰여내리더니 경례를 붙이였다.

자기들의 상관으로 알았던것이다.

이놈들은 경박호부근에 있는 위만군토벌대의 정찰병들이였다.

최춘국동지는 이놈들을 통해서 경박호부근의 토벌대놈들이 아침밥도 못먹고 어제밤 일제토벌대놈들이 무리죽음을 당한 경박호와 동경성사이의 언덕으로 급히 출동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최춘국동지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놈들의 아래우를 흝어보고나서 그런데 너희들은 정찰대라면서 어디 가서 놀다가 본대의 뒤꼬리를 따르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놈들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면서 자기들은 지난밤에 정찰을 나갔댔는데 새벽에 돌아와서 보니 이미 부대가 떠났기때문에 잠도 못자고 따라간다고 하며 우는 소리를 하였다.

최춘국동지는 금시 그놈들의 뺨을 후려갈길듯이 다가서더니 만일 오늘중으로 부대를 따라가지 않으면 후에 알아보고 총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 말이 떨어지자 놈들은 황급히 말파리에 뛰여오르더니 눈가루를 뽀얗게 일으키며 달아났다.

최춘국동지는 인차 대원들에게 아침식사를 시키고는 행길로 인솔하였다.

부대가 행군로정에서 돌파하기 가장 어려우리라고 생각되던 경박호에 다달은것은 아침10시경이였다.

그렇지만 이곳에 있던 적들은 이미 동경성쪽으로 몰려간 뒤인지라 부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대낮에 경박호를 건너 순조롭게 남호두부근에까지 다달을수 있었다.

이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도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과지도를 받으며 자란 최춘국동지가 얼마나 훌륭히 준비된 지휘관이였는가를 잘 알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사령관동지께서 모범을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대로 적과 싸웠던것이다.

이와 같이 독립려단편성에서 어려운 일로 제기되였던3중대를 데려오는 문제는사령관동지의 명령에 항상 충실했던 최춘국동지의 과학적인 타산과 예견성, 부대지휘에서의 령활성과 대담성으로 하여 성과적으로 해결될수 있었다.

이리하여 북만각지에서 활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의 수개 부대는 드디여1937년 봄에 조선인민혁명군 독립려단으로 편성되게 되였다.

사령관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조선인민혁명군 독립려단이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백두산을 향하여 의란땅을 떠난것은19374월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백두산으로 간다.》

행군길에 오른 대원들과 지휘관들의 마음은 크나큰 흥분으로 설레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조선혁명을 령도하시여새로운 앙양에로 불러일으키시는 곳, 그이께서 펼치신 조국광복의 찬란한 빛발이 전국에 퍼져가는 곳,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은 백두산으로 향하게 된 우리의 마음은 날을것만 같았다. 대원들과 지휘관들은 하루빨리 사령관동지를 만나뵈옵고 그이께서 높이 드신 조국광복의 위대한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모든 힘을 다하려는 오직 그 한마음을 안고 행군을 다그쳤다.

사령관동지를 찾아가는 조선인민혁명군 독립려단의 이 희망찬 행군은 최춘국동지가 지휘하였다. 그도 흥분된 심정을 누를길 없어 가끔 백두산이 자리잡고있는 남쪽하늘을 바라보고나서는 대원들의 행군을 재촉하군 하였다.

, 걸음을 다그칩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가 하루빨리 도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계실거요.》

행군은 점점 어려워졌다.

조선인민혁명군 독립려단이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은 백두산일대로 행군한다는것을 알아차린 일제놈들은 대병력을 동원하여 앞길을 가로막는 한편 악착스럽게 추격전을 벌리였던것이다.

동경성부근까지는 이미 적들의 배치정형과 행동방향을 환히 꿰들고있은 최춘국동지의 능숙한 행군지휘로 비교적 순조롭게 전진할수 있었지만 그후부터는 단10리도 적과의 전투없이는 전진할수 없었다.

대원들과 지휘관들의 마음은 차츰 긴장하여졌다. 앞으로는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 적들이 어디에 배치되여있는지 알수 없는 생소한 곳으로 행군해야 하였던것이다.

6월 초순경 동경성부근에서부터 집요하게 따라오던 적들을 완전히 소멸하고 2정의 경기관총과 100여정의 보총을 로획하는 전과를 올렸지만 행군은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계속 새로운 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던것이다.

전투는 하루에도10여차례씩 진행되였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곤난한것은 추격하는 적의 부대수가 급격히 증가되는 그것이였다. 적들도 우리가 어디로 전진할지 모르고있었으므로 추격전에 력량을 집중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날은 놈들과 싸우느라고20리도 전진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간고한 행군을 계속하던 어느날 우리는 어느한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는 일제놈들의 군마100여필을 발견하였다.

이때 최춘국동지는 그 말을 몽땅 빼앗아오라고 하였다.

우리는 보초병놈들을 제껴치우고 그 말들을 전부 빼앗아왔다.

그런데 이 숱한 말들을 무엇에 쓰려고 그러는지 우리는 그 의도를 알지 못했다.

우리가 말을 빼앗아가지고 오는 동안에 려단당위원회를 끝마친 최춘국동지는 말들을 쭉 돌아보더니 행군하기 어려운 동무들은 다 말을 타라고 하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의도를 알수 없었다. 사람만 행군해도 자취가 드러나 적들에게 자주 꼬리를 잡히는데 100여필의 말까지 몰고가면 그때에는 아무리 깊은 수림속으로 간다고 해도 우리가 지나간 자리는 대통로로 변할것은 뻔했던것이다. 이것은 적들에게 우리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놓는것과 같은것이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최춘국동지가 곁에 와서 방금 려단당위원회에서 토의된 문제를 알려주었다.

앞으로 얼마간의 행군에서는 동무들이 빼앗은 이 말들이 큰 역할을 하게 되오.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전투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여야 하겠소.

아무래도 적들을 뒤에 달고가면서 싸워야 하겠는데 지금처럼 행군을 하다가는 며칠을 더 가지 못해서 지쳐버릴것 같소.

그래서 수량상으로 몇배 우세한 적들앞에서 우리가 피동에 빠질것이 아니라 놈들을 우리 마음대로 끌고가면서 족쳐버리려고 하오.

만일 앞으로의 행군이 우리가 예견한대로 된다면 지금보다도 휠씬 헐해질것이요.》

나는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말을 빼앗아오게 한 그의 의도를 알수 있었다.

부상자들과 몸이 약한 동무들이 말을 타게 되니 행군은 자연히 빨라졌다. 더우기 말을 타지 않은 동무들도 100여필의 말이 지나간 뒤를 따르게 되여 걷기가 여간 헐하지 않았다.

최춘국동지는 말을 몰고가는 대렬을 중심으로 앞뒤에 전투력이 강한 중대들을 배치하였다. 특히 후위를 강화하였다. 뒤에는 언제나 싸움에서 소문난 중대들이 배치되였다.

적들은 최춘국동지가 예견한대로 우리가 말을 몰고 지나간 길을 따라 맹렬히 추격하여왔다. 놈들은 그전처럼 우리 부대의 행방을 놓칠가보아 두리번거리는 일도 없이 줄곧 길이 환히 난 앞만 보고 추격하여왔다.

그러니 첫날싸움은 아주 통쾌하였다. 후위를 담당했던 중대들은 최춘국동지가 지적해준 유리한 지형을 차지했다가 허겁지겁 따라오는 적(아마 우리에게 말을 빼앗긴 일제토벌대놈들 같았다.)들을 잠간사이에 녹여냈던것이다.

이 전투에서 그들은 최춘국동지의 지시에 의하여 적장교 두놈을 생포하였다.

우리는 적정을 알기 위해 놈들을 잡아올 경우에는 두놈 이상 붙들어오군 하였다.

그래야 그놈들을 따로따로 심문하여 얻은 자료들을 맞추어보고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얻을수 있었기때문이다.

그날 우리는 두놈의 일제토벌대장교놈을 통해서 남호두일대의 적정은 물론이고 액목과 돈화일대의 적배치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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