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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기 8권, 《혁명의 승리를 확신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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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3-06 10:5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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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8 


혁명의 승리를 확신할 때

                                                      

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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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란 어렵고 복잡한 사업입니다. 혁명을 하기 위하여서는, 다시말하여 낡은것을 없애고 새것을 창조하기 위하여서는 많은 난관과 시련을 이겨내야 합니다.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용기를 잃고 비관하며 우울해져서는 혁명가로 될수 없습니다.…


혁명투쟁에서 때로는 실패할수도 있으나 그것은 일시적인 실패입니다. 공산주의는 종국적으로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실패에 실망할것이 아니라 더욱 혁명적락관주의를 발휘하여 실패를 회복하고 새로운 승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교시를 학습하면서 나는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머나먼 남해 바다가로부터 수천리 험준한 산길을 걸어 당중앙을 찾아, 최고사령부를 찾아 들어온 사람들, 혈혈단신 심심산중이나 절해고도에서도 당과 수령의 숨결을 느끼며 어떠한 곤난이라도 이겨내는 당의 혁명전사들, 만경창파 무서운 폭풍속에서 표류하면서도 오직 당과 수령을 믿고 용감히 싸워 끝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나는 항일무장투쟁의 간고한 시기였던 1939년 겨울에 있은 일을 감명깊이 회상하지 않을수 없다.


1939년 겨울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준엄한 시련의 시기였다. 나는 이때처럼 혁명의 승리를 확신할 때 극복하지 못할 그 어떠한 난관도 있을수 없다는 진리를 가슴깊이 느껴본적은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 남패자회의에서 적들이 발악하면 할수록 수세에 빠져 쫓겨다닐것이 아니라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도처에서 놈들의 《공세》를 좌절시키며 놈들을 궁지에 몰아넣을데 대한 현명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에 따라 내가 속해있던 제1방면군은 남패자회의후 남만의 몽강과 화전일대에서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면서 활동하고있었다.


1939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일제는 중국본토에 대한 침략전쟁에서 전선이 고착되자 자기의 정예부대까지 동원하여 《후방안전》을 위하여 유격대에 대한 대규모적인 《토벌》작전을 감행하여나섰다.


적들의 집요한 대공세에 대처하여 제1방면군은 여러개의 소부대로 나뉘여 적을 분산시키면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내가 책임진 소부대는 지휘부와 떨어져서 매일과 같이 적들과 가렬한 전투를 진행하고있었다.


실로 우리앞에는 형언할수 없는 엄혹한 고난이 꼬리를 물고 닥쳐왔다.


앞뒤에서 집요하게 달려드는 적의 집중적《공세》를 제압해야 했으며 거기에다 우리는 나무가 얼어터지는 혹한과 굶주림을 이겨내야 했다.


이러한 때에 지휘부와의 련락지점에 나가있던 박영순동무로부터 우리는 뜻하지 않은 비보를 받게 되였다. 그것은 제1방면군 지휘부성원들이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는 비통한 소식이였다.


그들을 다시는 만나볼수 없게 된 우리는 적들의 2중 3중의 포위속에서 상부나 린접과의 아무런 련계도 없이 단독으로 싸워나가야 했다.


비분과 적개심으로 하여 마지막 한사람까지 적들과 결단을 내자고 이를 갈던 대원들도 전도가 막연했던지 나의 얼굴만 묵묵히 쳐다보았다.


비록 적은 성원으로 구성되기는 하였으나 한 대오를 책임진 나의 심중은 자못 복잡하여졌다.


혁명을 위하여 당장이라도 목숨을 바치려는 각오가 나의 심장을 틀어잡고있었다.


그러나 조성된 정황속에서 부닥친 시련을 극복하는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때 우리 대오는 몇십명에 불과했다.


이 적은 인원으로 몇십, 몇백배에 달하는 적들의 포위속에서 어떻게 싸워나아갈것인가? 어떻게 이 투쟁을 승리에로 이끌어갈것인가?

나는 온 정신을 모두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있었다.

이러한 때 나의 머리속에는 남패자에서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뵙던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순간 캄캄하던 눈앞이 삽시에 환해지면서 그이께서 해주시던 말씀이 쟁쟁히 울려왔다.

《앞으로 우리의 투쟁은 더욱 간고해질수 있소. 그럴수록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의 승리를 확신하고 끝까지 원쑤와 싸워야 하며 싸워서 승리해야 하오.》

나는 생각하였다. 바로 이 말씀은 이러한 정황을 예견하고 하신것이다. 그이의 사상대로, 그이의 가르치심을 그대로 실천하는가 못하는가에 의하여 우리들의 앞길이 달려있고 승패가 달려있다.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추호도 동요함이 없이 부닥친 난관을 극복하고 싸워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이의 새로운 전투임무를 받아 원쑤격멸에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대원들에게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전달하면서 이러한 나의 결심을 이야기하였다.


나의 결심을 지지하는 대원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결의가 력력히 어려있었다.


그런데 우리 대원들중에는 남패자에서 헤여진 후 그 누구도 그이께서 어느곳에 계신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우리들은 그이께서 제2방면군을 령솔하시고 다른 지역에 비하여 적의 력량이 몇곱절이나 더 집중되여있는 국경연안으로 또다시 진출하셨다는것만을 알고있을뿐 그후의 소식은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령관동지께서 반드시 준엄한 시련을 이겨내면서 원쑤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듭하고계시리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충만되여있었다.


우리들은 그 어떤 난관이 앞길을 막더라도 그이를 반드시 찾아가야 하며 그길만이 앞으로 최후승리를 쟁취할수 있는 길이라는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우리는 그이께서 계시리라고 짐작되는 동쪽을 향하여 행군을 개시하였다.


적들은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욱실거렸다.


낮에는 적들이 욱실거리기때문에 눈속에서 머리만 내놓고 하루종일 어둡기를 기다려야만 하였다.


야간에도 우리는 마음대로 행동할수 없었다. 적들의 불무지사이를 은밀히 빠져 불과 몇발자국만 나가면 또 불무지가 나타나군 하였다. 어떤 때에는 날이 새도록 불무지사이를 빠져다니다가 지난밤 떠난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때도 있었다.


적들은 보병뿐만아니라 항공대까지 동원하여 아군의 종적을 찾기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으며 삐라를 뿌리고 폭탄을 퍼부으면서 우리들을 위협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가장 곤난한것은 식량문제였다. 식량을 해결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대원들은 더욱 지쳐갈뿐이였다.


나는 우리 부대가 화전일대에서 활동할 때에 어느 한 깊은 수림지대에 식량을 묻어둔것이 생각나서 대원들을 인솔하고 그곳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지친 몸을 가눔하지 못하고 눈우에 쓰러지던 대원들도 며칠만 더 가면 식량이 있다는 말에 모두 기운을 내여 걷기 시작하였다.


한길이 넘는 생눈길을 헤치며 식량을 묻어두었던 곳이라고 짐작되는 골짜기에 이르러 우리는 언땅을 파헤쳐가면서 식량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식량은 없었다.


다음 골짜기에도 그리고 또 그다음 골짜기에도 식량은 없었다.


위만군에서 반변해 넘어온 병사들과 일부 신입병사들은 《도대체 어데로 가는가?》, 《김사령이 어데 계시는지도 모르고 넓고넓은 만주땅에서 어떻게 그이를 찾아낸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의식수준이 어린 그들의 심정을 나는 충분히 짐작할수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미리 약속한 길도 아니며 단 며칠간에 도달할수 있는 평탄한 길도 아니였다. 몇달이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운 간고한 길이였다.


나는 사령관동지께서 계신 곳을 알아보는 동시에 식량문제도 해결하고 대원들도 며칠간 휴식시킬 목적으로 송화강류역에서 활동하고있는 다른 소부대를 찾아 행군을 계속하기로 결심하였다.


화전땅을 지나 계속 굶으면서 행군하던 대원들은 하나둘 눈우에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부축여 세우면 몇발자국 걷지 못하고 또 쓰러지군 하였다.


눈속에서나마 단 하루밤도 발편잠을 자지 못한 대원들은 행군하면서도 졸고 어떤 대원들은 얼굴이 퉁퉁 부어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군복은 다 해여지고 신발창은 떨어져서 나무껍질로 얽어매여 신지 않으면 안되였다.


손과 발은 얼다 못하여 껍질이 일었고 쓰린지 아픈지 감각조차 없었다.


드디여 우리는 송화강상류의 어느 한 지점에서 한 소부대성원들을 만날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이들도 사령관동지께서 어디에 계신지를 전혀 모르고있었기때문이다.


그 소부대의 대부분의 성원들은 이미 적들의 《토벌공세》를 맞받아 용감히 싸우다가 희생되였고 몇명 남지 않은 대원들도 거의 부상을 당하였거나 동상을 입고있었다. 지칠대로 지친 그들은 장차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우리가 그처럼 기대를 걸고있던 식량도 떨어진지 이미 오랬다는것이다.


일부 대원들가운데서는 고난을 참지 못하고 대오에서 떨어지려는 기색도 나타났다.


무엇으로 이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줄것인가?


나는 생각해보았다.


(지금 곤난한것은 식량문제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정신상태다. 우리가 신심을 잃지 않고 견딜수 있는 정신적량식을 우선 주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정의로운 일이며 우리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칠 각오를 가지고 이 길에 나선 혁명전사라는것을 깨우쳐주어야 하며 우리는 반드시 사령관동지의 곁으로 갈수 있으며 반드시 적과 싸워 이긴다는것을 굳게 확신시켜야 한다.


끝까지 혁명의 기치를 고수하고 싸워 떳떳한 혁명가로서 사령관동지앞에 나서게 하자.)

이렇게 생각한 나는 이곳에서 잠시 휴식하기로 하였다.

피곤한 대원들은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자리에 척척 드러누웠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나무들이 있었으나 누구 한사람 불을 피울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처럼 모두가 피로할대로 피로해졌던것이다.

나는 도끼를 들고 비청거리며 박영순동무에게로 다가갔다.

박영순동무도 말없이 도끼를 들고나섰다. 내가 왜 도끼를 들고나섰는지를 알아차렸던것이다. 우리의 얼굴은 퉁퉁 부었고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였다.


우리는 서로 부축하면서 눈무지를 헤치고 나무를 찍어왔고 불을 피워 대원들이 언몸을 녹이도록 하였다.


나는 사령관동지의 사상을 담아 《혁명의 승리를 확신하고 끝까지 싸워 승리하자!》라는 내용의 글을 써서 이곳 후방공작소부대에서 가지고있던 등사기로 찍어내였다.


대원들에게 이 글을 한장씩 나누어준 후 나와 박영순동무는 불무지가에 모여앉은 대원들에게 사령관동지를 만나뵈옵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38년 11월은 1군에서 활동하고있던 내가 남패자에 도착한 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신다는 전령병의 전달을 받고 사령부천막으로 찾아갔을 때 그이께서는 나의 손을 힘껏 잡아주시며 나의 건강상태와 학습정형 그리고 사업정형을 자세히 물으신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적들은 최후발악을 다하여 우리의 혁명력량을 말살하려고 하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도 그러하였던것처럼 앞으로도 적들과의 투쟁을 순간도 멈출수 없다.


지금 우리의 부모형제들과 중국인민들이 일제의 학정하에서 광복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있다.


우리는 적들이 발악하면 할수록 놈들에게 큰 타격과 혼란을 줄데 대한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여 더 억세게 투쟁하여야 한다.


그러자면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여야 하며 어떠한 역경에서도 혁명의 최후승리를 굳게 믿고 원쑤와 싸워야 한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함께 식사를 나누시면서 나를 거듭 고무해주시였다.


나는 이날처럼 자신의 사업에 대한 높은 긍지와 무한한 기쁨을 느껴본적은 없었다는것을 대원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나는 이야기를 끝마치면서 우리가 비록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곳은 모르고있으나 그이께서는 적들이 발악할수록 그에 대처하여 반드시 적들에게 거대한 타격을 주면서 혁명승리의 날을 촉진시키고계시리라는것을 강조하였다.


나의 이야기에 뒤이어 이번에는 박영순동무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동만에서 싸워온 그는 사령관동지의 위대한 사상과 덕성 그리고 적들까지 《승천입지하고 동성서격, 둔갑축지를 마음대로 한다.》고 비명을 지르게 한 탁월한 전략전술에 대하여 실감있게 이야기하였다.


비록 극도로 굶주리고 지치기는 하였으나 이야기를 듣고있는 과정에 대원들의 얼굴에는 점차 생기가 떠올랐다.


《사령관동지께서 어디에 계신지 정말 모르겠소?》


이처럼 안타깝게 물어보는것은 이때까지 불만을 털어놓고있던 위만군출신의 병사였다.


나는 그에게 자신있게 그리고 친절하게 타일러주었다.


그이께서는 투쟁의 길에 서계시며 우리가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싸우면 반드시 그이를 만나뵈올수가 있다는것을 이야기하였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있던 한 대원은 불쑥 일어나 웨쳤다.


《우리도 김사령처럼 싸웁시다. 나는 혁명을 위하여 끝까지 충실할것을 맹세하오.》


그의 뒤를 이어 모든 대원들이 차례로 일어나 결의를 다지였다.


이렇게 아무런 격식도 없이 시작된 회의에서 우리는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일시적위기만 모면하려고 할것이 아니라 적들의 약한 고리를 찾아 적을 대담하게 침으로써 도리여 적들에게 혼란을 주어야 한다는것을 굳게 결의하고 목재소습격전투를 계획하였다.


굶주리고 지친 대원들과 함께 전투를 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대로만 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안고 계획한대로 전투를 지휘하였다.


앉아서도 움직이기조차 어려워하던 대원들도 모두 용감하게 싸웠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적지 않은 왜놈 수비대들과 위만군을 소탕하고 6마리의 소를 로획하였다.


한달, 두달, 수백수천리의 밀림속을 이처럼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면서 행군을 계속하였다.


지쳐서 기진맥진할 때마다 대원들은 우리가 나누어준 종이를 꺼내여 다시 읽어보군 하였다.


벌써 종이는 손에 닳아서 군데군데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서로 어깨를 부축한 대원들이 그 글을 읽고나서는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고 《적기가》를 소리높이 부르며 전진하는것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눈을 감을지언정 그 누구도 대오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당원들은 대원들의 앞장에 서서 생눈길을 헤쳐주었으며 전투시에는 항상 제일 위험한 장소에서 싸웠다.


그들은 먹을것이 생기면 먼저 대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오랜 대원이며 취사원인 공동무는 취사도구를 혼자서 도맡아지고도 나어린 대원들의 배낭이나 기관총을 그우에 덧놓고 걸었다.


남과 같이 굶주리고 남과 같이 지친데다가 남보다 많은 짐을 지고도 그는 늘 어린 대원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들을 고무하였다.


하루는 행군도중에 적비행기에 발견되였다. 신입대원들을 안전한 지대에 은페시키느라고 자기를 돌볼새 없던 공동무는 그만 기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우리는 그를 부축하려고 달려갔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괴로움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상처를 싸매주려고 달려온 대원에게 자기가 넘어지면서 취사도구가 마사지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취사도구가 그대로 있다는것을 안 그는 입가에 웃음을 띄운채 의식을 잃었다.


숙영지까지 우리는 그를 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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