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 도서

본문 바로가기
도서

오직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11-21 10:43 댓글0건

본문

[회상기]오직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편집국

<북바로알기운동>을 위해 북녘에서 출판된 도서를 소개합니다.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10권에 나오는 최현 항일혁명투사의 <오직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을 소개합니다. 최현 항일혁명투사는 1907년 6월 8일 낯설은 중국 땅의 독립군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일찌기 한생을 일제와의 싸움에 바치려는 결심을 품고 어린 나이에 총을 잡고 독립군을 따라나섰다가 7년이 넘는 감옥생활을 하였다. 1933년 9월 처음으로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반일인민유격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최현 항일혁명투사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 투철한 혁명적원칙성과 고결한 혁명가적풍모로 하여 군대와 인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최현 항일혁명투사를 원형으로 하는 예술영화 《혁명가》와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속편이 만들어졌다. 1982년 4월 10일에 사망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묘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있다. 


undefined


오직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류경수동무를 회상하여)

 

                                                     최    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충직한 전사인 류경수동무는 대담무쌍한 항일유격대원이였다.


1932년부터 조국이 해방되던 그날까지 나는 류경수동무와 한부대에서 계속 같이 싸웠으므로 그에 대하여 비교적 잘 알고있다.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께 무한히 충실한 류경수동무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한 후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 일편단심 헌신적으로 싸웠다.


1932년 8월에 항일유격대에 입대한 경수동무는 그때 나이가 17살이였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적에 대한 불같은 적개심과 모든 일에서의 남다른 열성으로 하여 그는 지휘원들과 대원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있었다.


경수동무는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었으며 또한 여간 락천적이 아니였다.


그러나 원쑤 일제를 격멸하는 무장투쟁행정에서의 그의 생활과 성장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유격대의 생활을 하게 된 그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준엄한 시련과 상상하기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나가야 하였던것이다.


이러한것을 회상할 때면 나는 지금도 왕우구 남석촌전투때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1932년 11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우리 중대는 송림동에서 산등을 타고 남석촌으로 내려오는 200여명의 적과 맞다들게 되였다.


적들은 우리의 집중사격으로 순식간에 50여명이 꺼꾸러졌다. 이렇게 되자 적들은 당황하여 일부는 뒤로 물러서고 일부는 은페지에 숨느라고 야단법석을 치게 되였다.


이러한 때 중대장은 돌격명령을 내렸다.


우리의 집중사격에 적들이 무리로 쓰러지는것을 보고 용기백배한 경수동무는 홍노배라는 별명을 가진 동무와 함께 중대의 선두에서 달려나갔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 일제《토벌대》놈들이 불시에 나타나는바람에 정황이 급변하게 되였다. 유격대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한 류경수동무는 그자리에 엎디라는 중대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냥 달려나갔다. 그러다가 함께 달려가던 홍노배라는 동무가 적탄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을 때에야 그는 자기앞에 수많은 일제《토벌대》놈들이 엎디여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나는 경수동무에게 빨리 퇴각하라고 소리쳤다.


그는 눈속에 딩굴면서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의 옷과 총은 눈에 뒤범벅이 되여 말이 아니였다.


내옆에 엎딘 경수동무는 격발기를 제끼려고 애를 썼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총을 쥔채 눈속을 딩굴다나니 격발기가 얼어붙었던것이다.


나는 그에게 얼어붙은 격발기는 어떻게 해야 떨어진다는것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는 꾸물거리다가 이번에는 불에다 녹이지 않으면 뗄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나는 그때에야 경수동무가 당황해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빨리 은페지가 있는 뒤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그날 전투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끝났다.


그날 밤 나는 경수동무의 곁에 잠자리를 잡았다. 밤이 이슥해지자 모두 깊은 잠에 들었는데 그는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가 일어나 앉는것이였다.


나도 일어나서 담배를 붙여물었다. 그리고 그에게 오늘 전투에서 적을 몇놈이나 잡았는가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저도 지금 그걸 생각하는중입니다. 첫방에 적 한놈이 꺼꾸러지는것은 보았는데 그다음부터는 알쌈 3개를 어디다 대고 쏘았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는 잠시 이글거리는 불무지를 들여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아직 사상적준비가 잘되여있는것 같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는 혁명을 위해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겠다고 결심했지만 오늘 홍노배동무가 적탄에 쓰러지는것을 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된 일인지 총도 제대로 쏠수 없었고 또 몸도 제대로 움직일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 겁먹지만 않았다면 정말 많은 적을 잡을수 있었습니다. 제가 돌격해나가다가 엎드렸던 눈무지에서 불과 20m도 못되는 곳에 10여명의 적들이 몰켜있는것을 보고도 수류탄을 던질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러고보면 겁에 질린 적들도 총을 제대로 쏘지 못한것이 분명합니다. 놈들은 기관총까지 휘둘러댔지만 불과 20m도 못되는 거리에 있는 나를 끝내 맞히지 못했으니까요.》


자기의 부족점을 뉘우치고 거기서 교훈을 찾은 경수동무의 생활은 그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우선 훈련에 대한 태도부터 달라졌다. 조준련습을 할 때에도 그의 눈에서는 원쑤에 대한 증오의 빛이 이글거렸으며 전투훈련을 할 때에도 실지 원쑤와 맞서 싸우는 그런 정신으로 하였다. 그리고 전투훈련때에는 될수록 어렵고 복잡한 정황속에서 단련되기 위해 남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그러기에 그는 훈련에서도 남달리 우수하였다.


사실 훈련의 성과와 그 질은 마음먹기에 달린것이다. 전투동작을 한번 하고 또 조준련습을 한번 해도 대원자신의 정신상태에 따라 그 질이 규정되는것이다.


경수동무는 이렇게 첫 전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자기를 준비하였기에 그후의 전투들에서는 언제나 용감하게 싸울수 있었다.


우리 중대는 그 전투가 있은지 얼마 안되여 또다시 큰 전투를 하게 되였다. 200여명의 적들이 왕우구 새지팡으로 기여들었던것이다.


이 전투에서 류경수동무는 용감하게 싸웠다.


우리 중대는 수적으로 우세한 적을 일격에 격멸하기 위해 지형이 유리한 남석촌 남쪽고지에 매복하였다. 이때 경수동무가 속한 소대는 맨 앞전호에 배치되였다.


이윽고 일제《토벌대》놈들은 2렬종대로 우리 중대가 매복하고있는 앞에 이르렀다.


우리는 중대장의 사격신호와 함께 일제히 명중탄을 퍼부었는데 경수동무도 첫사격에서 적 2놈을 연거퍼 꺼꾸러뜨렸다.


이 전투에서 경수동무는 일상훈련에서 꾸준히 련마한 자기의 사격솜씨를 훌륭히 발휘하였다.


나는 여기에 그날 전투에서 있은 한가지 실례를 더 이야기하겠다.


경수동무가 엎디여있는 맨 앞전호에서 제일 애를 먹은것은 적의 기관총수였다. 그놈은 어찌나 지독하게 기관총을 쏘아대는지 맨 앞전호의 동무들은 머리를 들기 어려운 형편이였다.


동무들은 이놈의 기관총수를 제껴버리려고 자리를 옮기면서 사격하였으나 한길이나 되게 패여나간 물홈에 들여박힌 그놈을 맞힐수 없었다.


이때 불시에 돌개바람이 일면서 기관총소리가 잠간 멎었다. 경수동무는 이 순간에 몸을 약간 일으키면서 그놈의 기관총수를 단방에 꺼꾸러뜨렸다. 여기저기서 경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러한 때 경수동무는 또 한방 갈겼는데 그 총소리와 함께 적기관총이 파괴되였다.


정말 통쾌하였다.


적들은 하늘같이 믿던 기관총이 마사지자 황급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일시에 전호속에서 뛰쳐나와 과감한 돌격전을 하였다.


이날 우리는 적도 많이 소멸하였지만 무기와 탄약도 수많이 로획하였다. 경수동무가 혼자서 쏘아눕힌 적만 해도 30여명이나 되였다.


이때부터 류경수동무는 용감하고 결단성있는 유격대원으로 알려지게 되였다.


이렇게 그는 어렵고 복잡한 전투속에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혁명적으로 단련하고 수양하였다.


우리 중대가 왕우구유격근거지에서 활동하던 1933년 가을이였다.


어느날 나는 상급의 긴급지시를 받고 북하마탕치기에 가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적들의 아성인 동녕현성을 공격할데 대한 작전계획을 세우시고 우리 중대도 부르시였다는것이였다.


나는 그이께서 보내주신 통신원과 함께 중대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대원들에게 알려주었다. 언제나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흠모하여오던 그이의 부르심을 받게 된 대원들은 너무도 감격하여 그저 서로 안고 돌아가면서 환성을 올릴뿐이였다.


그때 나는 중대정치지도원으로서 대오인솔을 책임지게 되였다. 중대에서 선발된 40여명의 대원들중에는 나이가 제일 어린 류경수동무도 들어있었다.


나는 항일유격대가 조직된 이후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큰 전투를 하게 되는것만큼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면서 매개 대원들에게 탄알 150발씩 가지게 한 다음 신발도 한컬레씩 여벌로 가지게 하였다. 그리고는 시간이 없는 관계로 강행군을 하면서 대원들의 전투준비상태를 검열하였다.


왕우구 북동을 떠난 우리는 빨리 걸어도 이틀길이 잘되는 소왕청 마촌까지의 거리를 하루반동안에 들이댔다.


참으로 모든 동무들이 나는듯이 달려갔던것이다.


나는 중대를 마촌에 남겨두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사령부로 갔다.


사령부는 맑은 시내물이 흐르고 단풍이 붉게 물든 골안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우리 인민의 영명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옵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통신원이 길을 헛갈렸기때문에 우리 중대가 늦게 도착하여 동녕현성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것을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한 지휘관을 부르시더니 마촌에 도착한 우리 중대 동무들의 식사와 잠자리를 잘 보장해주라고 지시하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지 우리 중대 동무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려는 그를 다시 부르시더니 《경비는 2중대 동무들이 서도록 조직하오. 먼길을 급히 오느라고 몹시 피로하겠는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시키지 말고 일찍 재우오. 오래간만에 연길유격대동무들을 만났으니 쉬지도 못하게 할수 있소.


동무는 오늘밤 그 동무들과 함께 자는것이 좋겠소. 아침식사가 늦어지지 않도록 하오.》라고 당부하시였다.


나는 대원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이 깊고 세심한 보살피심속에서 가슴이 뜨거워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눈보라 사나운 날이면 밤늦게까지 회의를 지도하시고도 대원들의 잠자리를 돌아보신 다음에야 자리에 누우신다는 그이, 식량사정이 어려울 때이면 자신은 때식을 넘기시면서도 대원들에게는 풀죽 한술이라도 더 먹이려고 심려하신다는 그이, 오늘은 먼곳에서 싸우다 달려온 우리 중대 동무들을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게 된 나의 마음은 한없는 행복과 감격으로 차고넘치였다.


항상 크나큰 사랑과 보살피심으로 우리 인민들과 유격대원들을 혁명승리에로 이끌어주시는 그이께서는 나의 긴장한 몸자세를 보시더니 편히 앉으라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연길유격대와 혁명조직들의 투쟁정형과 대원들과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세세히 물으시고나서 당시 조성된 국제국내정세와 조선혁명에 대한 방침적문제들을 알기 쉬운 말로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날이 샐녘에야 자리에 누우시였다.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의 곁에 눕게 된 나의 마음은 감격과 흥분으로 하여 좀처럼 진정할수 없었다. 그러다가 잠이 든 나는 누가 조용히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사이에 일어나시였는지 몸차림을 단정히 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려는것이였다.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밖으로 나가시려던 그이께서는 돌아서시면서 피곤할터인데 좀 더 자라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내가 그냥 일어나 복장을 정돈하니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그럼, 최현동무도 함께 갑시다. 잠자리가 불편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의 새벽날씨는 산산한 기분을 자아냈다. 그렇지만 그이와 함께 걸음을 옮기게 된 나의 가슴은 뜨거웠다.


그이께서는 우리 중대 동무들이 들어있는 병실문을 조용히 여시였다.


이미 아침식사를 끝내고 전투준비를 갖추고있던 우리 중대 동무들은 일시에 일어섰다.


그이께서는 매우 기쁘신 안색으로 둘러보시며 대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나서 나이어린 경수동무의 어깨를 짚으시며 물으시였다.

《고향은 어디요.》


《함경남도 신흥군 원평면입니다.》


《언제 입대하였소.》


《작년 8월에 입대하였습니다.》


《나이는 몇살이요?》


《18살입니다.》


《18살, 어린 혁명가구만!》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경수동무의 총을 만져보시였다.


바로 이때 망원초에서 적정을 알리는 신호총소리가 들려왔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품에 안겨 한없는 감격과 흥분속에 휩싸여있던 우리 중대 동무들은 모두 긴장하여졌다.


그이께서는 오래간만에 만난 동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적들이 기여들었다고 하시면서 덤비지 말고 산으로 오르라고 하시였다.


이리하여 우리 중대 동무들은 마촌에 있던 왕청 2중대 동무들과 함께 고지에 올라가서 적과 원거리전투를 하게 되였다.


그날 덤벼든 적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유격대동무들의 놀라운 사격술을 잘 알고있으므로 절대로 근거리에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놈들이 더 기여들지 않으면 싸워보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가 하여 마음이 초조하였다.


그런데 먼곳에서 곡식낟가리에 불을 지르는 등 만행을 감행하며 돌아가는 적들의 동태를 주의깊게 살피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나를 부르시더니 한번 시범사격을 하라고 하시였다.


제일 가까운곳에 기여든 적과의 거리도 근 500m나 되니 명중사격을 하기에는 어지간히 먼거리였다. 나는 침착하게 조준하여 한놈을 단방에 꺼꾸러뜨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듣던 소문과 같이 과연 명사수라고 치하해주시면서 몸소 보병총을 드시더니 그리 겨냥하는것 같지도 않게 연거퍼 네댓방 쏘시였는데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매번 적병이 보기 좋게 쓰러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대원들은 일시에 환성을 올렸다. 그리고 모두 자신만만한 사격자세로 그 먼거리의 적들에게 맹렬히 명중탄을 안기였다. 경수동무도 그이의 명중사격에 고무되여 몇놈 잘 쏘아넘기였다.


실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투지휘는 령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이 없어하는 대원들에게 이처럼 백발백중할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어 그 먼거리의 적들을 순식간에 격멸하여버리도록 지휘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사격술에 얼마나 감탄하였던지 경수동무는 전투가 끝나자 그이께서 잡으셨던 보병총을 신기하게 살펴보기까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밤에도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에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동무도 알고있는바와 같이 지금 우리 앞에는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더욱 강화발전시켜야 할 절박한 과업이 나서고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을 강화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것은 반일인민유격대를 강화하는것입니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일제를 때려부시는데서 가장 적극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장투쟁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하여 유격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힘을 돌려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유격대원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야 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유격대오를 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는것입니다.

항일무장투쟁을 성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서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강력히 추진시켜야 합니다.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전개하는데서 중요한것은 당창건의 조직사상적준비를 실속있게 진행하는것입니다.

또한 혁명대오의 사상의지적통일과 그 순결성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당조직들과 혁명조직성원들에게 종파주의의 본질과 해독성, 종파분자들의 행동수법을 정확히 인식시켜 그들로 하여금 반종파투쟁에 적극 나서도록 하여야 하며 종파주의사상이 우리 혁명대오안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강력적인 교시를 접수한 우리는 모두 흥분된 마음을 안고 귀로에 올랐다. 그때 류경수동무는 그이께서 근거지보초대용으로 사용하라고 선물로 주신 구경이 크고 소리가 요란한 다태갈이라는 총을 메고오면서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우리는 도중에 뒤에 따라오는 적들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주고 승리의 기세드높이 왕우구 새지팡으로 유유히 돌아왔다.


그때 근거지에 남아있던 동무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돌아오는 우리 중대 동무들을 여간 부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인차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인 교시를 그들에게 전달하였다. 이틀밤을 꼬박 밝히면서 접수한 그이의 교시를 전달하는데도 몇시간이 잘 걸리였다.


우리는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하였다.


이 시기 류경수동무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자신을 철저히 무장하기 위해 그이의 교시학습에 있는 열정을 다하였으며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그이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하였다.


우리 중대가 마촌에 갔다오기 전인 1933년 봄에 있은 일이였다.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게시물
[정론] 주체조선의 절대병기
서초동광화문 군중은 예수를 죽이라고 외친 좀비군중
김영철 아태위원장, 한미합동군사훈련 강행하면 충격적인 응징으로 대응
조선 외무성 일본담당 부국장이 아베에게 참교육 시전
세계적 호구에서 언제나 탈출할지…
앞에서는 《평화》타령, 뒤에서는 군비증강
김원웅 광복회장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일제 만행 폭로 광고 게재’
최근게시물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12월 7일(토)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12월 7일(토)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12월 6일(금)
주석님과 성구속담(18)
USA Pretend, Unmasked
식은땀이 흐르고 편한 잠을 잘수가 없는 그들
《백두산대학》
윤곽을 드러내는 새로운 길과 북미정상회담 (1)
절하고 뺨맞기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12월 6일(금)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12월 6일(금)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12월 5일(목)
Copyright ⓒ 2000-2019 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webmaster@kan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