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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1]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4. 마에다의 기록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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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8-29 12:3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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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1]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4. 마에다의 기록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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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에 창작된 전인광 북녘 작가의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이 지금 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소설은 타이의 어느 한 산간벽촌에서 일어난 두 명의 일본인들에 대한 살해사건을 파해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첫 서두에 이렇게 씌여져 있다.

《나는 죽더라도 증명할것입니다. 력사가 증명하고 내가 증명합니다. 이 력사를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 - 한 조선녀성의 증언중에서 -

 

<조선의 오늘>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4. 15문학창작단의 작가들을 비롯하여 나라의 관록있는 작가들이 《하나의 조일관계력사론문》《바늘끝도 안들어가게 구성이 째인 작품》《이렇게도 쓸수 있겠구나 하는 창작적묘리를 깨우쳐준 소설》이라고 평가하는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은 작가의 피타는 사색과 탐구불같은 열정과 높은 창작적기량에 의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라고 밝혔다.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네덩이의 얼음>을 연재한다.



(제 31 회)

제 6 장

4. 마에다의 기록영상

 

무라야마는 미쯔오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자 어지간히 놀랐다.

전화기를 들자마자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는 법을 모르는 미쯔오가 경황없이 떠들어댔던것이다.

《무라야마! 난 며칠전에 어떤 무기명투고자에게서 원고 하나를 발표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네. 한 전범자에 대한 고발기사인데 나를 믿고 하도 절절히 당부하는것이길래 그들의 요구대로 소개광고기사를 먼저 내보냈거던. 당장에 호기심의 반영이 쭉 일어나더군. 그래 보내오겠다던 첫회분 원고를 잔뜩 기다리는데 어디 와야지. 거의 단념했다 했는데 한달이 거의 된 오늘 불시에 그 투고자가 원고를 보내왔더란 말일세.》

무라야마는 그만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니 그 이마무라가 보낸 원고를 받았다는 기자가 미쯔오 자네였단 말인가?》

《뭐? 원고 보낸게 누구? … 이마무라?》

《아… 아닐세. 그런데 그 원고가 어쨌단 말인가?》

《그 원고를 읽어보다가 난 순간에 타이에서 일어난 그 니시하라, 도미꼬살인사건의 진실, 그 진실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았단 말일세. 내 이제 당장 자네한테 가겠네. 전번에 말하던 그 마에다 있지?

그 촬영가 말이야. 그 친구 지난여름에 주홍이라는 중국계재일연출가와 북조선의 생존자 두명을 데리고 저 먄마까지 갔다왔다네. 그 친구 찍은 화면속에 자네가 꼭 봐야 할것이 있다니까. 기다리라구, 당장 갈테니…》

무라야마는 며칠전 남조선에서 미쯔오를 만났을 때 마에다가 찍은 기록물을 보여주겠다던 생각이 났다.

사다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가까운 호텔 2층의 한방을 내고 거기서 미쯔오에게 련락했다.

한시간이 거의 지나 미쯔오가 장발을 한 키가 큰 한 사나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미쯔오는 그가 마에다라고 소개했다.

무라야마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마에다선생! 얘긴 많이 들었는데 반갑습니다.》하고 인사했다.

미쯔오가 옆에서 수선을 떨었다.

《무라야마! 자네 이 마에다가 어떤 보따리를 안고왔는지 이제 놀랄걸세.》

마에다가 만든 영화는 《일본의 빈곤한 정신-<일본군위안부>, 그 아픔의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된 2시간 45분짜리 장편기록영화였다.

일본군성노예강제련행을 다룬것이라 했다.

그는 이전에도 일본이 조선에서 략탈해간 문화유물을 담은 기록영화를 만든 사람이였다.

이번 기록영화촬영에 17명의 증언을 담았는데 그 증언자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 각지를 돌았고 중국 해남도와 타이, 먄마까지 갔으며 조선에도 네번이나 갔다고 했다.

제작비가 1 400만엔이나 들었는데 순 자부담이라고 했다.

력사의 진실을 이렇게 제 돈을 들여가며 피타게 탐구하는 일본인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무라야마는 은근히 속으로 혀를 찼다.

마에다는 지독한 흡연가였다.

미쯔오 못지 않은 날카로운 지모가 번뜩이는 사십대의 사나이였는데 쉴새없이 담배를 갈아대였다.

방안에 랭온풍기가 돌아가는게 천만다행이였다.

마에다가 그들 촬영단의 조선과 중국취재이야기가 담긴 촬영테프를 TV와 련결시키자 《유괴, 강제련행, 륜간-일본군위안부의 길》이라는 첫 부제목이 나오고 나리다비행장에서 출발하는 마에다의 모습이 등장했다.

《조선녀성들을 강제련행한 사건과 관련하여 일본정부가 이번에 보인 태도는 아연실색할 정도로 파렴치의 극치입니다.

그처럼 온 반도땅을 휩쓸며 공공연히 수십만의 녀인들을 끌어간짓을 물적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군의 관여를 부인하겠다는것입니다.

오늘 일본을 이끄는 정치인들은 이런 후안무치한 거짓말을 서슴없이 공식적으로 할수 있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나자신도이런 나라의 한 국민이란 말인가.

내가 최근에 통절히 느끼는것은 일본의 정치가들의 철저한 자기중심의 비량심, 비도덕적, 력사위조의 루적속에서 우리 일본국민들은 도덕과 인성을 모르는 몰지각한 국민, 남에게 피눈물의 피해를 입히고도 세계에서 진지한 사죄를 제일 안하는 파렴치한 국민으로 변해가고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력사를 진실그대로 알게 하는 그 길에 우리 언론인들이 앞장에 설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나는 사실을 사실그대로 알고 국민에게 전하고저 중국계연출가 주홍씨와 함께 조선과 중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편집물에 맨 먼저 등장한것은 머리가 하얀 허리굽은 한 할머니였다.

《일제에게 겪은 조선녀인들의 피눈물의 기록을 남긴 논픽션작가 강금주씨를 통해 <한국>에서 우리가 만난 이 할머니는 올해 89살의 조순희씨입니다.》하는 마에다의 소개에 이어 목갈리는 음성의 목소리가 울려나 왔다.

《나에게는 미친채로 70을 넘긴 딸이 있습니다. 내가 한생 뒤바라지를 해주고있습니다. 만약 그날 네놈의 일본병사가 우리 집에 오지 않았더라면 큰딸이 미치지도 않았을것이고 작은딸이 죽지도 않았을것입니다.

1943년 2월 14일 아침이였습니다. 갑자기 방 뒤문이 열리더니 일본병사 네명이 신발을 신은채로 뛰여들었습니다.

남편은 그해 1월 강제징용으로 일본순사한테 련행돼가고 없었습니다.

나는 딸들을 강제련행하려는 일본병사들에게 딸들대신 나를 데려가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일본병사는 처녀가 필요하다면서 16살과 14살의 두 딸을 끌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다시한번 빌붙으며 제발 열흘후에 결혼하게 된 큰 딸만이라도 사정봐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갑자기 두 병사가 큰딸의 옷을 벗기고는 달려들었습니다.

나는 번개같이 부엌으로 달려나가 칼을 집어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돼지처럼 살이 찐 가무잡잡한 병사가 일본도를 빼들고 작은딸의 목덜미를 잡았습니다.

<죽이지 말라! 집이고 돈이고 밭이고 다 줄테니 딸만은 죽이지 말아 달라.>

내가 결사적으로 앞을 막으며 소리쳤으나 놈은 만신의 힘을 모아 칼을 내리쳤습니다.

피가 랑자하게 흐르는 속에 딸애는 목이 떨어지고 나는 기절해 쓰러졌습니다.

얼마후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니 그 네놈이 달라붙어 맏딸을 륜간하고있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악당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놈들은 악당보다 더 지독합니다. 일본놈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야수같은 그놈들의 흉악한 낯판대기, 에미앞에서 딸자식을 륜간하는 그 악마들의 모습, 눈앞에서 릉욕당하는 딸자식을 구원할수 없는 그 치욕.

… 그날부터 맏딸은 70이 넘은 오늘까지 정신병자입니다.

아, 아, 아무리 잊자 해도 그 지옥도가 이 에미를 꾸짖으며 나를 책망하려들어 한때는 딸과 함께 자살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살아온것은 일본에 천벌이 내리는것을 보기위해서였습니다.

저 하늘에서 일본을 요정낼 천벌이 어서 떨어지라고, 그래서 일본이란 저 추악한 나라를 이 세상에서 쓸어버리라고 나는 매일같이, 매일같이 빕니다.》

울부짖는 백발의 로인은 이미 반은 실성하다싶이 되여있었다.

무라야마는 목구멍으로 무엇인가 뜨끈한것이 치밀어올라 입을 꽉 깨물었다.

가슴이 후두두 떨리였다.

경찰관이 되여 그자신이 얼마나 많은 살인사건과 강력범죄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겪어보았던가.

하지만 턱을 덜덜 떨며 실성하다싶이 되여 손을 저으며 절규하는 저 할머니를 통해 안겨오는 그 참혹상만큼은 그렇게 무라야마의 가슴을 쳐본적이 없었다.

정상의 사고와 리성을 가진 인간치고 이런 광경앞에 가슴이 떨리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인간이 아닌것이다.

주홍이라는 중국계연출가가 나왔다.

《바로 이런 저들에게 일본이 히로시마의 피해를 그 아무리 호소해도 그들이 과연 받아들일리 있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것은 북조선의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는 그들 촬영진과 두 할머니의 모습이였다.

《여기 북조선에서 만나게 된 박영심로인은 성의 노예로 너무도 처참하게 짓밟혔고 릉멸되여 사라져가던 한 일본군위안부의 모습으로 일본의 추악의 과거를 다시 생생히 돌이켜보게 한 또 한명의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화면에서 주홍은 하나의 사진을 들어보인다.

《이 사진은 1944년 9월 중국의 운남과 먄마지역의 송산전투가 끝난 후 련합군에 의해 구원된 네명의 위안부들을 찍은것입니다.

이 네명중 임신한 이 녀자가 력사적진실의 확인에 나선 82살의 박영심로인입니다. 현재 이 사진원본은 미국회도서관에 보관되여있습니다.》

《…?!》

무라야마는 처음 보는 사진이였다.

그 사진이 주는 강렬한 충격에 무라야마는 굳어졌다.

쭈그리고 앉은 세명의 녀자들옆에 큰 배를 내밀고 바위에 기대여 고통스럽게 서있는 임신부의 모습, 그것은 순간에 무라야마의 심혼을 흔들며 그의 두손이 후두두 떨리게 했다.

주홍이 계속 말한다.

《남경을 점령하고 30여만의 중국인민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일제는 20만을 헤아리는 중지나파견군 병사들의 성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숱한 조선의 처녀들을 짐승처럼 사냥하여 성노예로 끌어갔습니다.

박영심로인이 위안부생활을 강요당한 이 2층짜리 벽돌집은 량보경이라는 중국인이 경영하던 려관을 몰수하여 만든 당시의 리제항위안소입니다.》

화면에 《나는 죽더라도 증명할것입니다. 력사가 증명하고 내가 증명합니다. 이 력사를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하고 마당에서 웨치는 박영심로인의 모습이 나온다.

《팔순이 넘은 오늘 남경으로 결연히 발걸음을 옮겨 60여년전의 악몽이 시작된 위안소위치를 직접 확인하며 박영심로인은 일본의 성노예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있습니다.》

《바로 이 집입니다.》하면서 위안소로 들어서는 할머니모습.

량켠으로 문을 마주하고 잇달린 매 방을 하나하나 더듬어오던 로인이 한 방앞에 이르더니 격하여 말을 꺽, 꺽 갑자르며 《이 방입니다. 내가 갇혔던 19호실이 바로 이 방이예요.》하고 가리키더니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만다.

《이번에 박영심로인이 당시 건물만 해도 8개로 최대규모의 일본군위안소가 운영됐던 리제항위안소를 확인하면서 중국정부는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일떠서던 이 일대의 개발을 전면중단하고 여기에 3천평규모의 위안소전시관을 세울 계획을 발표했으며 일제의 성노예만행을 고발하고 증언하는 상징물로 박영심할머니의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어 화면은 로인이 《위안부》로 끌려다닌 로정을 따라 운남성을 거쳐 먄마와 중국의 국경인 송산전역을 내보내고있었다.

《이 시기 상해와 싱가포르를 거쳐 먄마의 양곤에 도착한 조선위안부들은 3천여명에 달하였는데 일본군은 거기서 20~30명씩 조로 나누어 먄마 각지의 일본군부대들에 배속시켰습니다.》

이어 박영심로인이 눈물을 닦으며 목메인 어조로 말하고있다.

《여기 송산전장에 끌려와 낮과 밤 따로없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되는 왜놈들에게 성봉사를 강요당했습니다.

옆에서 폭탄이 튀는데도 옷을 벗고 달려들던 왜놈들이였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망에 빠진 놈들이라 하나같이 광기에 날뛰며 달려들었고 부상당한 놈들까지도 치료를 해달라고 하고는 칼을 빼들고 그짓을 강요했습니다.》

주홍이 말한다.

《나는 마에다씨와 함께 <위안부사진이 말해주는 심각한 력사>라는 제목으로 박영심로인의 이 사진을 중심으로 일본군의 성노예만행에 대한 자료들을 취재, 편집하여 로인의 생일 12월 15일에 방영할 계획입니다.》

(주홍의 TV특집은 실제 2002년 12월 12일에 NHK 뉴스란을 통해 방영되였다. 1 270만세대의 시청자들이 이 편집물을 보았다.

이 특집은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죄악의 공포에 질린 일본의 극우익은 당장 주홍의 목을 베야 한다고 떠들었다.)

이어 주홍이 다른 한 할머니를 소개한다.

《이 녀성은 북조선의 강원도 원산시에 살고있는 정송순로인입니다. 이 녀성은 1943년 정신대로 징집되여 먄마의 메꾸데라위안소에서 위안부생활을 강요당했습니다.》

정송순로인이 화면에서 이야기한다.

《왜놈들은 조선의 숱한 위안부들이 전장에서 죽게 되자 먄마와 타이의 녀성들까지 위안부로 끌어왔습니다. 나는 지금도 타이의 칸쿤마을에서 끌려와 나와 함께 메꾸데라위안소에서 치욕을 강요당했던 샨프리양이라는 라후족녀성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여기 보이는 이 마을은 라후족이 살고있는 칸쿤이라는 마을입니다.》

이어 화면에 나오는 한 산간마을의 전경, 이때 화면을 여겨보던 무라야마가 놀라 일어서며 《가만, 정지!》하고 소리쳤다.

마에다가 영문을 몰라 화면을 정지시켰다.

《마에다선생! 방금 칸쿤마을이라고 나왔는데 그 화면을 다시 봅시다.》

화면을 뒤로 돌렸다가 다시 시작했다.

례의 산간마을이 나타났다.

《틀림없군. 바로 그 마을이요.》

그것은 무라야마가 며칠전에 웅카라와 함께 수사진을 끌고 찾아갔던 그 칸쿤마을이였다.

무라야마가 흥분되여 소리치자 미쯔오가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 서울에서 나에게 타이의 저 칸쿤이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이제 화면을 잘 보라구.》

무라야마는 대답할념도 잊고 화면에 눈길을 모았다.

정송순할머니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메꾸데라위안소는 잠보쬬 33련대 중대장이던 니시하라 겐따로라는 26살 난 대위가 맡아보았는데 타이국경일대에서 붙잡은 유격대의 지휘관이던 샨프리양의 남편을 이 니시하라가 학살했습니다. 이 녀자의 남편과 그와 함께 싸운 40여명의 남자들을 붙잡아다 다섯명씩 나무에 매달고는 머리를 중히 여기는 타이의 관습을 존중해준다며 그들모두의 머리가죽을 벗겨 죽였습니다. 그 나무가 저 티크나무입니다.》

무라야마의 눈에 그리도 인박힌, 바로 며칠전에 직접 가보았던 그 수백년 묵은 티크나무가 화면에서 너무도 선명히 보여왔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무라야마는 긴장해서 북받치는 비통함과 원한으로 한절반 울음에 잠겨 떨려나오는 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처와 딸들을 끌어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남자들을 학살하고 그에 항거하는 녀인들과 아이들을 기관총으로 쓸어눕힌 니시하라놈은 다음에는 그옆에 있는 법당안에 살아남은 녀자들을 몰아넣고 제놈 병사들을 밀어넣어 륜간하게 했습니다.

사람의 머리가죽을 벗기고 녀성들을 집단륜간하는 눈뜨고 볼수 없는 이 만행에 강제로 가담해야 했던 대학생출신 한 일본병사는 그날로 정신착란자가 됐다고 합니다.

니시하라놈은 법당안에서 온갖 치욕을 치르다 죽은 라후족녀자들의 몸에 돌을 매달아 삥강이라는 강에 처넣게 했고 샨프리양과 다른 한 녀자는 메꾸데라위안소로 끌어갔습니다.》

무라야마는 빚어놓은 사람처럼 굳어져 움직이지 못했다.

범인들이 왜 방코크에서 랍치한 니시하라와 도미꼬를 저 북방의 칸쿤마을까지 끌고 갔으며 니시하라를 그 수백년 묵은 티크나무에 목매달고 도미꼬를 거기서 떨어진 법당안에 따로 끌어다 죽였는가 하는 의문이 한꺼번에 풀렸던것이다.

타이현지에서는 밝혀낼수 없었던 사건의 진상을 이렇게 도꾜에 와서 피눈물나는 한 《위안부》로인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될줄이야.

그러니 이번에 니시하라와 도미꼬를 살해한 범인들은 분명 니시하라가 감행한 칸쿤마을학살사건과 직접적인 련관이 있는 인물이다.

그가 누구겠는가? 츄홍따이! 웅카라가 이야기하던 왜놈들에게 량부모를 학살당한 그 원한을 외우고 또 외운다는 트레킹려행사 사장!

눈물속에 네살 난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불렀다는 샨프리양, 츄홍따이는 바로 그 어머니의 아들이 틀림없다.

화면속의 정송순로인은 주체할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리며 계속한다.

《이번에 먄마의 송산과 칸쿤마을을 다 돌아보며 촬영한 후 우리일행이 치엥마이에 도착했을 때 너무도 뜻밖의 놀라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우리가 든 호텔에 나를 잘 안다면서 타이의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질 않겠습니까.》

화면에서 정로인이 계단란간을 붙잡고 내려가며 《나를 안다니 무슨 꿈같은 소리냐!》하는 장면이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던 정할머니가 마주오는 할머니를 멍히 바라보다가 그만 입을 딱 벌리며 굳어진다.

《이게… 이게 누구요. 엉? 내 고향 원산에서 메꾸데라위안소에 함께 끌려와 온갖 고초 함께 겪었던 그 복희, 복희 아님메?》

이어 화면에서 부둥켜안고 울음속에 서로의 얼굴을 보고 또 보며 어깨를 두드리며 격정을 터뜨리는 두 할머니의 눈물겨운 정상… 그 화면을 타고 정로인의 설명이 계속된다.

《메꾸데라위안소에 샨프리양을 끌어온 니시하라놈은 제놈들에게 반항해 나선 유격대장의 처를 갈가리 찢어놓으라고 악담을 줴치며 그의 방에 련 사흘 병졸들을 련이어 들이밀었습니다. 이 라후족사람들은 우리 조선말과 비슷한 말을 많이 썼는데 샨프리양은 마을에 숨겨두고 온 네살 난 아들, 어부바 어부바 하며 업어주고 안아주던 아들의 이름을 밤마다 목놓아 부르군 했습니다.

그때 그의 옆방에 들었던 애가 바로 나와 함께 원산에서 끌려왔던 저 박복희였습니다. 이름처럼 인물도 곱게 생기고 소학교까지 졸업한 18살 나는 처녀였습니다.

철도공장에 다니는 총각과 약혼을 하고 친척집에 갔다오다가 길가에서 처녀사냥을 하는 왜놈들에게 강제로 랍치되여 먄마까지 끌려온 복희는 첫날 왜놈들에게 몸을 버린 후 밤새워 울더니 이 몸으로 다시는 고향에 못 간다며 목을 매고 자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놈들에게 발각되여 끝내 실패했습니다.

기어이 그 소굴에서 도망칠 결심을 품은 그는 자기 생각을 옆방의 샨프리양에게 말했습니다. 온통 아들생각뿐이던 샨프리양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던지라 선뜻 응해나섰습니다. 두 녀자는 복희가 몰래 건사했던 숟가락을 건네주고 건네받으며 밤마다 뒤벽을 팠고 끝내 탈주에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무인지경의 쟝글속을 헤치며 동쪽으로 가고 또 갔습니다. 서로 부축하고 걷고 또 걷다가는 밤이면 무서움에 부둥켜안고 뜬눈으로 새웠습니다.

그밤들에 샨프리양은 총명하고 당돌한 자기 아들 츄홍따이에 대해, 그에게 들려주던 병아리와 그 엄마에 대한 민화를 끝없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가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군 했습니다.

하지만 두 녀자는 니시하라놈의 마수에서 벗어날수 없었고 끝내 군견을 앞세우고 뒤따라온 놈들에게 붙잡히고말았습니다.

악에 받친 니시하라놈은 위안부들을 모두 모여놓고 그앞에 발가벗겨 꽁꽁 묶은 두 녀자를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 도망치자고 했는가고 따졌습니다.

언니! 꼭 살아서 아들애를 만나요 하고 복희가 눈물속에 외우는데 이미 죽음을 각오했던 샨프리양이 복희를 밀어제치며 제가 나섰습니다.

이 원쑤놈아, 나다. 내가 그랬다 하고 니시하라놈에게 쌓이고쌓인 저주를 퍼부으며 <어서 날 죽여라. 이 악귀야!> 하고 피가 터지게 웨치고 또 웨쳤습니다.

얼굴이 흙빛이 된 니시하라놈은 이발을 악물고 나서더니 군도를 뽑아들고 그 자리에서 샨프리양의 목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오장놈들에게 그의 몸을 탕쳐서 군견의 고기밥으로 던져주라고 소리쳤습니다.

눈에 피발이 선 니시하라놈이 다음에 복희에게 다가서는데 그때 옆에 섰던 부하장교놈이 그가 피동이고 인물이 고우니 혼을 뽑고 다스려 장교전용으로 하겠다고 말하는것이였습니다.

니시하라의 허락을 받은 놈들은 알몸의 처녀를 뱀들이 우글거리는 뱀사에 끌어다 처넣었습니다. 복희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습니다. 그런 복희를 놈들은 저녁에 다시 장교숙소로 끌어갔습니다. 그후부터 복희는 더는 도망칠 의지를 잃고 정신마저 혼몽해지고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날무렵 어느날 나는 니시하라놈이 군기를 태우라고 소리지르는것을 듣고 왜놈들이 졌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놈들이 도망칠 때 몇명의 녀자들과 도망쳐서 방공호로 뛰여들었습니다.

그때 복희를 아무리 찾았으나 찾을수 없었습니다.

포위되여 빠질 길이 없게 된 왜놈들은 <옥쇄>를 한다며 나머지 수십명의 조선위안부들을 전호에 몰아넣고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몰살시킨 후 광기어린 자폭을 하거나 할복을 했습니다.

난 복희도 그때 죽은줄 알았습니다. 놈들이 도망친 후 겨우 살아난 우리 몇은 몸에 난 상처에 선인장을 찧어 바르고 풀뿌리를 캐고 메뚜기를 잡아먹으며 쟝글속을 헤맸습니다.

밤에는 어머니를 부르며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에다와디강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거기서 또다시 니시하라놈을 만나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풀숲에 숨어서 살피니 그놈들이 글쎄 자갈밭에 불을 피우고 사람을 잡아먹고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풀을 뜯어 입을 씻으며 너털거리며 웃던 그 니시하라놈의 악귀같은 상통을 보고 우리는 모두 기절하고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죽은줄로만 알았던 그 복희가 글쎄 반세기도 지난 오늘 타이에 살아있고 더구나 놀라운건 그가 그때 자기를 막아서며 죽음을 무릅쓰고 나섰던 샨프리양의 고향으로 찾아가 고아가 된 그 아들의 어머니가 되여 그때부터 그를 맡아 키워 오늘은 타이의 어엿한 기업가로 내세운 그것입니다.

호텔에서 밤새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감동에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갈수 없는 몸, 하지만 그처럼 처절히 짓밟히고 참혹한 수난을 당했으면서도 인간의 도리와 의리를 지키는 길에 한생을 바친 조선녀성 박복희, 짐승들을 눌러딛고 인간의 고매함이 어떤것인가를 자기 모습으로 보여준 박복희, 그가 얼마나 떳떳하고 돋보이던지 난 비행장에서 헤여질 때까지 그의 손목을 잡고 놓지를 못했습니다.》

비행장에서 붙안고 놓지를 못하는 두 할머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록영화는 끝났다. 화면은 꺼졌으나 무라야마는 충격이 너무 커서 한동안 그대로 앉아있었다.

기록영화는 한가정의 어머니로, 안해로 될수 있는 순결한 생명의 넋과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생을 고했던 수천수만의 녀인들이 어떻게 처참하게 성의 노예로 릉멸되여갔는가를 말해주는 생생한 고발장이였다.

무라야마는 벌겋게 번져진 얼굴을 차마 들수 없었다.

방안의 사람들은 다 같은 일본인들이였지만 이런 모습으로 세계앞에 고발될수 있는 일본인이라는게 참담하고 부끄러웠다.

불현듯 눈뜨고 볼수 없는 영화의 내용들이 다시 눈앞에 재현되여 환각으로 흘러가면서 일본《천황》을 처벌하기로 한 도꾜법정의 판결을 집행한다는 칸쿤마을에서 보았던 판결장의 글발들 하나하나가 예리한 창날이 되여 아우성치며 날아오는 환각이 들어 무라야마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사건의 전말이 이제는 불을 보듯 너무도 명백했다.

충격이 너무 커서인지 무라야마는 한동안 시간이 흘러서야 마음을 다잡았다. 자기가 찍은 화면이 사건해결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모르고있는 마에다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그 감정을 표현할수는 없었다.

다만 력사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훌륭한 기록물을 보여주어 고맙다는 상례적인 인사만 했다.

《참, 부인을 새로 만났다는데 재미가 어떻습니까?》

《아, 참 좋은 녀자를 만났습니다. 세심하구 아주 다심한 생활형의 녀성입니다.》하며 마에다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렇잖아두 제 시간이 돼서… 다음에 미쯔오군과 무라야마선생을 한번 초청하겠습니다. 그럼.》

마에다는 분명 그 녀자를 만나기로 한 시간인듯 웃으며 총총히 떠나갔다.

《무라야마!》

뒤에 남은 미쯔오는 숙소로 돌아가기 전 이렇게 불러놓고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저런 처절한 과거를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고 계속 이대로 간다면 사실상 일본의 앞날은 암담하네. 난 우리 일본이 저 한줌도 안되는 우익광신자들에게 휘몰려 세계의 량심앞에 단죄를 당하는 오늘의 현실이 가슴아프기 그지없네.》

무라야마는 미쯔오에게 물었다.

《미쯔오, 그 투고자가 보내온 원고를 실으려나?》

《래일 조간에 싣도록 하겠네. 이제 당장 마에다의 저 기록영화가 나갈 판인데 우물거리다 선코를 떼우면 어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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