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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상봉이야기 3]생사를 알 수 없는 형님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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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05 04:3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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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북을 방문하여 헤어진 형님 가족을 만나고 돌아온 이형식 재미동포의 가족상봉이야기를 소개한다. 필자는 <재미동포전국연합회>의 도움으로 70년 분단 조국의 저 편에서 월북한 형님의 유족을 눈물과 회한의 상봉을 하고 왔다고 한다. 필자는 북조선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와 미국의 <재미동포전국연합회>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무한한 감사를 올린다고 하면서 수십만 재미동포들중 나와 같은 처지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을 북조선에서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신뢰를 가지고 <재미동포전국연합회>를 찾아주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의 가족상봉이야기를 연재로 소개한다.

 


[가족상봉이야기 3]

 

 

생사를 알 수 없는 형님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 나날들

 

이 형 식(재미동포)

 

 

     재미동포의 한 사람인 나는 해방된 우리 조국이 둘로 갈라지던 비극의 시기에 '월북'의 추측을 낳고 행방불명되어 지금까지 근 70년간 이산가족으로 남았던 형님의 유족들을 조국의 저 편에서 기적처럼 찾았다. 우리 가족은 형님의 생사와 행방에 관해 근 70년간 암흑 속에 묻혀 있었으나 <재미동포전국연합>의 인도주의적 '이산가족찾기 및 상봉' 사업의 혜택을 받아 형님을 북조선에서 찾아보았다. 비록 찾고 있던 형님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기적처럼 그의 유족들을 찾는 광명을 맛보게 되어, 나는 2015년 여름에 평양에 가서 생면부지의 그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만나본 조카들이 내게 가져다 준 형님의 ‘리력서’란 이름의 자서전을 통해 그의 월북경위를 포함한 전생애의 기록을 접하게 되었다. 열흘간으로 계획된 나의 평양방문에서는 조카들과의 상봉에 이어 많은 사적지들 및 기념물들과 문화적 유산들을 돌아보면서 다시 하나가 될 통일조국을 가슴으로 느끼는 꿈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나와 같은 ‘이산가족’의 불행을 겪고 있을 많은 재미동포들에게 나의 이 체험을 소개함으로써 혹시 북조선에 있을지 모르는 이산가족, 특히 월북가족이나 친척들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 가길 바라며, 통일조국을 희망하는 모든 동포들에게 하나 된 조국의 꿈을 더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3. 재미동포전국연합회>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의 길을 찾다

 

그러던 중에 나에게 천우신조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현재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재미동포연합’)>와 그 단체의 회장인 윤길상 목사님(은퇴)을 나의 한 지인들 통해 알게 된 2014년 봄이었다. 미국에 존재하는 많은 동포단체들이 연합하여 설립한 <재미동포연합>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이바지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진정한 애국애족의 동포단체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재미동포연합>이 하는 활동중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하나의 중요한 사업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재미동포들 중에서 남, 북으로 흩어진 가족들을 찾아주고 만나게 도와 주는 인도적 사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산가족을 둔 남한출신의 재미동포들이 의탁할 수 있는 유일한 동포의, 동포에 의한, 동포를 위한 이산가족상봉사업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까지 이산가족찾기에 관한한 암흑에 있던 나에게 이것은 얼마나 큰 광명의 소식이었던가?

▲가족,친척찾기 및 상봉신청서 신청서 양식

 

윤길상 목사님을 만나 뵌 즉시 나는 그 분의 지도하에 <재미동포연합>이 행하는 ‘재미동포 남북이산가족 찾기’ 사업이 북조선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 (“해동”) >와 협력하여 이뤄지고 있는 인도적 사업임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남, 북 이산가족을 둔 재미동포들에게 크나큰 광명이 아닐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즉시 <재미동포연합>이 제공하는 <흩어진가족찾기 신청서>를 <재미동포연합>에 제출하였다. 신청서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거나 있다고 생각되는, 내가 찾는 가족의 이름, 생년월일, 남한에서의 직업, 부모의 성명과 생년월일, 나와의 관계를 기재하고, 그 가족과 헤어질 당시의 남한의 집주소, 그를 찾는 나와 기타 가족들의 이름과, 현주소와, 생년월일등 인적사항을 기재하였다. 여기에 기재한 나의 가족으로는 나 자신과 나의 누님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기타 참고사항으로는 헤어진 시기와 사유에 대하여인데, 나는 분명히 나의 형님이 1948-9년경의 미상의 때에 월북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을 뿐이라고 사유을 밝혔다.

 

이렇게 하여 근 70년의 이산가족 형님을 북조선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나의 실낱같은 희망은 이제 북조선의 <해동>으로부터의 결과보고를 고대하는 기다림의 세월을 낳게 되었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정해진 것이 아니었고 그 결과도 어떠한 예측을 불허하였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이 기다림은 세상에서 가장 불확실한, 그러나 가장 가치있는 기다림이었다. <재미동포연합>을 통해서 그 결과를 듣기까지 적어도 10개월이 지나는 동안에 내가 겪은 흥분과 착잡한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내가 신청서를 쓸 때에 걸었던 희망과 기대에 못지않게 온갖 의문들과 자문자답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내 마음을 스쳐갔다. 과연 형님이 북조선에서 찾아질까? 그가 다행히도 북조선에 살아 있다면 지금 나이가 89세이니 과연 그의 생존을 낙관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만약에 형님이 북조선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는 보고라도 받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이 근 70년간 미지 속에서 애타게 궁금해 했던 형님의 행방에 대한 해답이 되지 않겠는가? 설사 형님이 돌아가셨다 해도 만약 그의 생존한 부인이나 자손들만이라도 찾아진다면 이 또한 형님 자신을 찾는데 버금가는 기쁨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무슨 의문이 더 필요하랴. 그냥 내가 형님의 행방과 생사에 대한 그 어떤 소식이라도 알아 볼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아봤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들과 살아있는 남매들과 나 자신에게 떳떳해질 수 있는게 아니겠는가? 이토록 많은 상념들이 나의 머리를 스쳐갔지만, 결국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결론은 주저치 말고 찾아 나서라는 내 영혼의 명령이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나의 한 핏줄을 찾아야 하는 인간적 사랑의 명제이며, 또한 조국분단의 비극이 안겨준 자식과의 영원한 이별의 한을 운명처럼 가슴에 품고 살다가 돌아가신 부모님들에게 대한 못다 한 효성이며, 내 핏줄 찾기로부터 통일된 조국을 느껴보고자 하는 한 가닥 애틋한 조국애의 발로이다 (계속)

 

 

 

관련기사

 [가족상봉이야기2] 미국에 있는 이산가족은 어떻게 만날까?

 [가족상봉이야기1] 나는 어떻게 이산가족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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