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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11 평양 사투리인가 평양 표준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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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0-31 03:0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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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 거주하는 강산 씨가 9월 3일부터 11일까지 25년 만에 북녘 땅을 밟은 후 여행기를 써서 발표하였다. 북 바로 알기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필자와의 협의 아래 그의 방북기를 연재한다. - 편집국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11

 

평양 사투리인가 평양 표준말인가

 

 

평양호텔의 대식당은 2층 긴 복도를 지나서 있는데 내가 묵는 호텔의 객실과는 반대 방향이다.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들어가니 천정이 아주 높고 멋진 샹들리에가 장식되어 아름다운 궁전처럼 보이는 넓은 방인데 전면에 대형 금강산의 폭포 그림이 걸려 있어 운치를 살려준다.   규모로 보아 2층도 있어서 한 번에 이백여 명 이상 쉽게 수용할 수 있을 듯하다.

 

 

 

 

 

이미 여기저기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식사중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에서 온 동포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우리가 식사할 자리는 안쪽이었는데 부근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있어 말을 걸어보니 일본에서 온 조선대학교 학생들이다.  오늘 오후에 비전향장기수들을 만나러 간다고 한다.  현재 63명 가운데 30명이 생존해있다고 한다.  북부조국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들의 아파트엔 우리도 이후에 방문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은 나중에 서술하기로 하겠다.

 

 

 

 

 

아침식사는 양식으로 나왔는데 토스트에 버터, 잼, 달걀프라이, 야채절임, 그리고 팟죽이 나왔다.  우린 음식을 가져다준 봉사원에게 미국식으로 식사때 커피도 함께 마실 수 있도록 주문했다.  첫날의 달걀프라이는 손잡이가 달린 프라이팬에 담긴 그대로 식탁에 올려줘서 따끈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침을 먹지 않는 습관을 지켜왔는데 그건  옛날 함석헌 옹의 책을 읽고 1일 2식을 실천에 옮겨왔기 때문이다.   그래 심한 노동이나 운동을 하지 않을 경우엔 하루 두 끼만 먹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하고 실천해왔는데 이번 여행에선 워낙 일찍 잠이 깨는 바람에 에너지가  더 필요하기도 하였지만 북부조국에서 여행하면서 만날 수 있는 맛난 음식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 접대원 한 사람이 다가와 노길남 박사께 인사를 한다. 노 박사님이 자주 오시다보니 이미 구면이 되어 반가워서 찾아온 것이다.  이곳에서 일한 지 11년이 되었다고 하니 벌써 여러차례 노 박사님과 만났을 것이다.   이름표를 보니 최목란 접대원이다.  이곳 접대원들  가운데 제법 오래되어 관리직에 있는 듯하다.  노 박사님이 최목란 접대원에게  남한의 여배우를 닮은 접대원이 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했다.  여배우 누구를 닮았을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노 박사님과 대화하다보니 영화배우 문근영이다.  내일은 나온다고 하니 얼마나 닮았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노 박사님을 반갑게 맞이한 최목란 접대원

 

첫 아침식사를 봉사해준 김은주 접대원과의 대화

 

우리에게 음식과 커피를 가져다준 사람은 김은주 접대원이었다.  노 박사님이 추석때 제사를 지내느냐고 물어본다.  앞으로 나흘 후면 추석인데 북의 인민들이 추석을 쇠는 방법을 노 박사님은 어느 정도 아시는 듯하다.  김은주 접대원이 묻는대로 대답해준다.  추석날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그 방법이 참 특이하다.  추석 전에 유골보관소에서 조상들의 유골함을 찾아서 집으로 가져온다고 한다.  그리고 추석날 아침에  준비한 음식과 함께 그 유골함을 놓고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유골함을 놓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이미 널리 자리잡은 것으로 볼 때 북부조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통의 경우라면  묘지를 사용하지 않고 화장을 하는 것 같다.   유골보관소에서 조상의 유골을 찾아 온다는 것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내 몸을 낳아준 조상의 뼈를 담은 함을 추석날이나 제삿날에 어루만지면서 그 조상에 대해서 더욱 깊은 마음으로 옛날을 추억하고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것에 감사할 수 있으리라.  종이에 쓴 지방보다 오히려 유골함을 제삿상에 놓는 것이 훨씬 더 후손들의 마음에 와 닿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남한에서 이렇게 북한처럼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지방마다 그 방법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어렸을 때 내 고향에서는 명절때 제일 큰 집에 모두들 모였었다.   어머니가 기독교 신자라 나도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나갔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고 멀찌기서 지켜만 보았다.  큰아버지들과 사촌 형들이 마루에 주욱 늘어서서 조상께 올리는 밥과 국을 몇 차례씩이나 바꿔가면서 절을 하였다.   아마 몇 대 선조들의 제사를 같이 지낸 것 같다.  제사가 끝나면 나이 든 몇몇 어른들은 미리 벌초해서 단장한 산소를 찾아뵙고 우리들은 이웃의 친지들을 방문하는 것으로 추석날 아침을 보냈다.   

 

조상들에게 제사지낸 음식을 기독교 신앙에선 피하도록 하였지만  내 어머니와 나는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았다.  음식은 그저 음식일뿐이라 여기고 아무 거리낌없이 먹었다.  그래도 보통의 음식과는 달리 제사 음식에서는 향냄새가 배어들기도 해서 약간 야릇한 기분으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고향의 친지들과 명절에 한 자리에 모였던  것은 내가 미국 이민으로 남한을 떠나오기 전의 일이니 벌써 서른 일곱해나 되었다.  가끔 방문을 하여도 명절에 맞춰서 가기가 어려웠고 지금은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 도시의 사촌 집에서 지낸다고 하니 그 규모와 방법이 많이 달라졌으리라.

 

 

 

평양호텔 의무실의 김금석 의사와 노길남 박사

 

김금석 의사의 응급진료가방

 

식사를 마치고 2층 복도의 반대편으로 돌아오는데 의무실이라는 방이 있어 그곳을 잠깐 들렀다.  노 박사님이 문을 두드리신다.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호텔의 의무실이란 어떤 곳인가해서 들른 것이었다.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김금석 의사였다.  평양의학대학을 나온 후 17년째 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전공이 고려치료라고 하는데 남한의 한의사와는 좀 다른 것 같다. 호텔에서 24시간 이 의무실은 문을 여는데 주로 가벼운 환자들의  1차 진료를 여기서 하고, 중환자들은 2차 진료소로 보낸다고 한다.  북의 많은 의사들이 해외에서 봉사를 하는데 김금석 의사 본인도 방글라데시에서 2008년에 4년간 의료기술협조를 하였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어떻게 일했느냐고 하니 영어로 소통하였다고 했다.  

 

김금석 의사와의 대화

 

대화를 하는 동안 김금석 의사의 이름을 적다가 한참 애를 먹었다.  김굼석이라고 발음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몇 번을 물어보니 굼은보석할때 굼이라는 것이다.  아, 이건 내가 종종 겪는 문제였다.  금으로 발음할 것을 경상도 사투리로는 조심하지 않으면 검으로 발음하게 된다.  평양에선 그 금을 굼으로 발음하게 되는가보다.  이 발음이 평양 사투리가 아니고 평양에선 굼으로 발음하는 것이 표준 발음이라고 우긴다면 어쩔 수 없다.  굼으로 발음하는 것을 내가 익혀서 알아듣고 가끔 사용하기도 하면  될 문제다. 무엇보다 북부조국의 수도는 평양이 아니던가.  진료소 한쪽에 어항이 있어 살펴보니 금붕어와 열대어로 보이는 물고기 세 마리가 있다.  따로 김금석 의사에게 금붕어를 발음해보라고 하지 않았지만 "굼붕어"라고 발음하지 않을까 생각하고는 속으로 크게 웃었다.

 

 

금붕어를 평양에서는 '굼붕어'로 발음하는지 나는 모른다.

 

5층의 숙소로 돌아오는데 숙소 부근의 작은 휴게실에서 웅변을 하는 듯 두 여성들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무슨 일인가 궁금한 차에 박사님이 그쪽으로 향하여 인사를 하니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들려준다.  

 

조선대학교의 옛스승과 연극배우가 된 제자 사이라는 두 여성을 만남

 

젊은 여성은 이곳 국립연극극장의 연극배우인데 일본에서 찾아온 조선대학교의 옛 스승을 만난 것이다.  예전엔 스승이었지만 지금 북부조국에 찾아와서는 옛 제자로부터 조국에 대하여 강습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북에 와서 옛 제자와 반갑게 만나 제자로부터 북부조국을 배우는 것이 그렇게 행복해보일 수 없다.  좋은 시간 보내시라고 했다.  같은 호텔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게 된 조선대학교의 스승과 제자들의 친가족같은 모습은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목격할 수 있었다.  좋은 스승에 좋은 제자들이 나오는 법이다.  모두 북부조국 학교의 전통을 일본의 동포들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리라. 이후에 사진과 함께 그 부분에 대하여서도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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